김연아ㆍ아사다 마오 은퇴의 두 시선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2-2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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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좌)와 아사다 마오(우)의 은퇴를 바라보는 한일 양국의 전혀 다른 시선이 씁쓸하게 느껴진다.(사진=뉴시스)

마지막까지 사랑스러웠다. 그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답고 나비보다 우아했다. 우리는 그를 김연아라 쓰고 ‘피겨여왕’이라 불렀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너무나 많다.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을 피겨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했고, 피겨를 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피겨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우리는 그의 우아한 몸짓을 보며 행복했다.

김연아에게도 라이벌이 있었다. 일본의 피겨스타 아사다 마오다. 그는 일본 정부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선수 중 한명이다. 일본엔 아사다 마오와 같은 선수가 아주 많다. 이번 소치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을 딴 하뉴 유즈루를 비롯해 남녀 싱글 ‘톱10’에 5명(남2ㆍ여3)의 선수가 포진됐다.

홀로 한국 피겨를 지탱해온 김연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를 압도했다. 주니어 시절부터 이어온 10년 라이벌 경쟁도 김연아의 압승이었다. 특히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는 세계신기록을 달성하며 아사다 마오를 따돌렸다. 두 사람의 라이벌전은 한ㆍ일 양국의 자존심 대결이었기에 더 짜릿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10년 라이벌은 이번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완전히 끝을 맺었다. 김연아가 이번 대회 전부터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아사다는 3월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만, 그 무대를 끝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크다.

흥미로운 것은 김연아와 아사다의 은퇴를 바라보는 한ㆍ일 양국의 전혀 다른 시선이다. 한국 피겨 역사는 ‘김연아 전(불모지)’과 ‘김연아 후(전성기)’로 양분될 만큼 한국 피겨의 새 역사를 창조했다. 안타깝지만 그가 떠난 국내 피겨는 다시 불모지다. ‘평창 꿈나무’ 김해진과 박소연이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 각각 16위와 21위를 차지, 4년 뒤 상위권 입상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반면 일본은 아사다가 떠난다 해도 피겨계 전체가 흔들릴 이유는 없다. 그저 한명의 피겨 선수가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해주는 정도다. 한ㆍ일 양국의 피겨 환경을 비교해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국내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576명(2012년 대한빙상연맹 통계)으로 2008년(279명)에 비해 2배나 늘었지만 일본의 1/4 수준이다. 게다가 피겨 전용경기장은 아예 없다. 각 지역별로 피겨 전용경기장을 1~2개씩은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피겨 환경을 보며 김연아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짐작케 한다.

바로 이것이 김연아의 은퇴가 암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연아가 세계 정상을 휩쓴 최근 6년 동안 사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훈련 환경을 개선하고 유망주 발굴을 서둘렀다면 김연아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지금처럼 암담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결과적으로 김연아는 아사다에게 이겼지만, 한국 피겨는 일본을 이기지 못했다.

이제 평창이다. 하루 빨리 ‘김연아앓이’에서 벗어나야할 때다. 이대로라면 제2, 제3의 김연아가 찾아와도 우리는 일본을 이기지 못한다. 훈련 환경을 개선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해 유망주 발굴에 힘을 쏟아야 한다. 달나라에서 뚝 떨어진 ‘피겨여왕’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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