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리더의 휴브리스, 필연적 함정인가 -한숙기 한스코칭 대표

입력 2014-02-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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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 사연이 속속 드러나면서 스포츠계에서의 성공에 있어 선수 자신의 기량뿐 아니라 그를 키워주는 지도자나 양육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선수 육성을 전담하는 지도부의 오만이 한 체육인의 선수 인생 전반을 뒤흔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분석 단위로서 기업 자체가 아니라 의사결정권자 개인을 조명하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일수록 비즈나 경영학적 관점이 아닌 가정, 전제, 내면화된 규칙, 자아 이미지, 심리적 편중 등 CEO의 개인적 특성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TV시장을 호령했던 소니의 TV부문 분사, 매출 10조원의 무리한 목표를 정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든 웅진그룹, 청계천 사업의 성공에 이은 무모한 4대강 사업계획 뒤에는 과거의 성공 체험에 젖어 다른 상황에서도 성공을 일반화하는 CEO의 오만함이 있었다. 아놀드 토인비는 한 번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자신의 능력과 방법론이 모든 것에 통하리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일컬어 ‘휴브리스’라고 했다.

다트머스 경영대학원 핑겔스타인 교수의 성공했다가 망한 기업을 연구한 저서 ‘실패에서 배우는 성공의 법칙’은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회사들이 정확히 똑같은 이유로 실패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실패를 부르는 경영자의 일곱 가지 습관 중 무려 5개가 휴브리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자신과 기업이 환경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해답을 자신이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장애물을 과소평가한다. △과거의 성공에 집착한다 등.

특히 일등기업이 신사업이나 인수합병을 추진하다가 고꾸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기업 인수 시 지불하는 인수 프리미엄의 크기가 CEO의 휴브리스 크기와 연관이 있음이 1990년대 이뤄진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인수합병 100여 개 사례를 통해 드러났다. 인수 프리미엄이란 인수 발표 직전의 주가 대비 인수 시 실제로 지불한 금액으로 크면 클수록 인수의 투자경제성이 낮아짐에도 불구하고 휴브리스가 큰 CEO는 인수 후 성과창출에 대한 능력의 과신으로 큰 액수의 프리미엄을 보란 듯이 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투자가 워런 버핏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려는 기업가는 개구리를 멋진 왕자로 변화시킬 아름다운 공주라고 스스로를 여긴다”고 말한 바 있다. 슬프게도 동화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개구리가 된 왕자를 마법으로부터 풀어주려는 키스는 많이 시도되었지만, 기적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 CEO의 휴브리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선 최근 이룩한 훌륭한 경영성과다. 성과를 이룬 CEO는 혹시 있을 자신의 약점에 대해 눈이 멀어지고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자기고양편중은 더욱 강화된다. 휴브리스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찬사도 있다. 기업의 성공을 CEO 개인의 공으로 포장하는 미디어 덕분에 CEO들은 영웅적 스타가 되어간다. 대외적 파워뿐 아니라 조직 내 영향력도 커지면서 스스로 느끼는 자기중요도는 더욱 고양된다. 자아존중감, 나르시시즘, 파워에 대한 욕구 등이 혼합돼 거대자아(Gargantuan self)로 자리 잡게 된다.

CEO의 거대자아는 관료적 조직구조로 나타나기도 하고 2인자와의 급여 차이를 현격히 벌리기도 한다. CEO의 연봉이 조직원 평균 급여액에 비해, 파산한 은행의 경우 생존 은행보다 파산 전 5년간 현격히 높았던 사례가 있었다. 이사회의 감시 기능이 저조한 경우 CEO의 오만지수는 더욱 강렬히 작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CEO가 가질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싸구려 식사와 진실이다. 신경과학적으로 보자면 휴브리스는 종종 일어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인지적 과정이다. 분명한 것은 아무도 100% 좋은 결정을 어느 상황에서든 항상 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경험과 습관의 오로라 안에 갇히지 않기 위해 제로베이스 사고 또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멀리 보는 난장이가 될 뿐 아니라 난장이를 통해 거인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키오스섬의 왕에게 눈을 빼앗긴 오리온이 어깨에 올라 탄 난장이 캐달리온 덕분에 동쪽으로 돌아갈 수 있었듯이 말이다. 나는 혹시 성공에 눈을 빼앗긴 거인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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