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신화를 이룬 세계의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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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케빈 케네디는 지난 2004년 저서 <100년 기업의 조건(Going the distance)>을 통해 1970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약 1/3이 13년 후 인수, 제휴, 청산에 의해 사라졌다고 밝혔다.

다국적 기업의 수명이 40∼50년, 70년에 선정된 500대 기업 가운데 3분의 1이 13년이 채 지나기 전에 흡수, 합병되거나 사라졌다는 것이다. 일본의 유력 경제지인 <일경 비즈니스>는 1896년 이후 100년간 일본 100대 기업의 변천사를 연구를 통해 자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30년 정도라고 밝혔다.

전세계 무수한 기업들 중에서 장수를 누리고 계속 성공가도를 달리는 기업들에게는 어떠한 특징이 있었다. 이에 그 사례와 특성을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본다.

◆ 세계 각국의 장수기업들 =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장수 기업으로는 이견도 있으나 서기 578년에 설립된 일본의 ‘공고구미(金剛組)’라는 건설사를 꼽고 있는 게 정설이다.

이 회사는 설립된 지 올해로 1428년째를 맞는다. 공고구미는 백제의 목수 유중광이 일본에 정착하며 시텐노우지라는 절을 지으면서 설립했다. 이 회사는 절과 성을 건축하고 유지보수 에 특화된 건설업체로 우수한 기술력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 예로 지난 1995년 1월 27일 진도 7.2의 강진이 고베시를 강타했지만 이 회사가 지은 사찰 대웅전은 무사했다고 한다.

서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는 1288년 스웨덴 광산 운영에서 시작된 '스토라'를 꼽고 있다. 스토라는 구리제품 생산에서 출발해 1894년에는 화학산업, 그리고 1898년에는 핀란드 엔소(Enso)와 합병했다. 스토라엔소는 현재도 세계 10대 제지기업이다.

세계 각국의 대표적 장수기업으로는 프랑스의 경우 서기 1000년 전후에 시작된 와인제조회사‘샤토 굴랭’, 독일은 1304년에 시작한 호텔기업‘필그림하우스', 영국에는 1541년 세워진 모직물회사‘존 브룩’, 네덜란드에는 1554년 설립된 비누제조사‘데베르굴데한트' 그리고 중국에는 우황청심환으로 유명한 동인당 약국이 1669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다.

◆ 장수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 = 기업의 세계에선 한 분야의 산업이 정점에 달하면 기존사업만으로는 연명할 수 없어 성공적인 변신 후 더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는 사례가 있다.

현재도 글로벌 대기업 집단으로 군림하는 일본 '스미토모의'그룹의 출발은 1590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로 거슬러 간다. 리에몬 소가가 벳시(別子) 동광산에서 구리 제품을 제작하면서 태동한 스미토모는 금속, 상사, 전기공업 등을 핵심계열로 두고 현재는 은행과 화학 분야를 주요사업부문으로 삼고 있다.

지난 1802년에 설립돼 200년을 넘긴 듀폰의 출발은 화약제조에서 였다. 이 회사는 1900년대 초에는 화학회사로 변신을 하며 셀로판, 레이온을 생산했으며 1938년엔 '나일론'을 발명하고 1980년대에는 생명과학 분야에 진출했다. 이어 1990년대에는 머크사와 합작을 강화하며 생명사업을 강화했으며 전자재료 사업을 개시했다. 듀폰은 종합과학회사를 모토로 생명과학 사업을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윤리경영을 통한 고객 신뢰 획득으로 장수를 누리는 기업들도 많다. 존슨가 3형제가 1886년에 설립한 미국 뉴저지에 설립한 '존슨 앤 존슨'은 외과용 드레싱에서 출발해 제 1차 세계 대전 직후 '밴드에이드' 등을 통해 선풍을 일으키며 사세를 확장해 갔다. 이 회사 윤리경영의 하이라이트는 창업주의 아들인 로버트 우드 존슨사장이 1948년에 내놓은 <우리의 신조>라는 미국 최초의 기업 사명 선언서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존슨 앤 존슨은 이후 현재까지 이 선언서 내용을 직원들에게 철저한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신조란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 ▲전세계 지역사회, 세계 공동체 ▲ 회사의 주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고객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신뢰를 지켜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업종의 선도기업간 합병으로 더욱 지배력이 강화된 사례들도 많다. 유태계 존 D. 록펠러가 1882년에 저지스탠더드오일과 소코니에서 시작된 엑슨은 세계정유화학시장에서 1위를 고수해 오며 지난 1999년 세계 4위의 석유회사 모빌사를 흡수했다. 합병을 통해‘엑슨 모빌’은 2000년 들어서부터 210억 배럴에 상당하는 석유를 비축하고 있으며 정유시설에서는 매일 600만 배럴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페니실린, 비아그라로 친숙한 화이자 그룹도 2000년 워너램버트 인수 후 2003년 파머시아를 합병해 세계 최대 제약회사로 성장했다. 2차례의 M&A로 전 세계 제약업계 시장점유율이 11%로 올라섰고, 2004년 매출액은 525억1600만달러, 순익규모도 113억6100만 달러가됐다. 화이자그룹은 독일에서 모험을 갈망하며 미국으로 건너온 사촌 형제 찰스 화이자와 찰스 에어하트가 1849년에 설립한 화학 약품 회사인 챨스 화이자 앤 컴퍼니에서 비롯됐다.

화이자로 대변되는 글로벌 제약기업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기술혁신과 시장 점유를 고수하기 위해 R&D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붓고 있다는 것이다. 화이자는 지난 2003년 연간매출액이 422.8억 달러였고 R&D 투자로 매출의 16.2%인 71억달러(8.5조)를 썼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차입경영을 지양하고 보수적인 자금 운영으로 성공가도를 이어오는 기업들도 있다. 일본 도요타는 1950년대 한때 부도직전 이후 무차입 경영으로 전환해 현재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 고성장기업인 HP역시 필요자금을 내부에서 조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837년 윌리엄 프록터와 제임스 갬블이 비누와 양초제조를 시작하면서 출발한 P&G는 핵심역량에 집중하는 기업의 대표적 예다. 비달, 팬틴, 오랄비, 위스퍼, 질레트 등 이 회사 브랜드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으며 창업 이후 줄곧 이 회사는 소비자, 변화주도, 브랜드 중심 경영에 초점을 맞춰왔다. 최근 방한한 CEO 래플리 회장도 유아, 가정, 미용, 화학제품 3대 핵심 사업에 전력하겠다고 밝혀‘핵심’이란 한 단어에 P&G의 모든 전략이 함축돼 있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관련업종으로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나간 기업들도 많다. 시티은행(Citibank)을 거느리며 연매출 9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시티그룹은 1812년 주법은행인 뉴욕시티은행으로 출발해 1915년 인터내셔널뱅킹을 흡수했으며 1978년, 1981년에는 카트블란치와 다이너스클럽을 흡수, 신용카드 산업에 진출해 자리를 굳혀 갔다. 이후 1982년, 1983년에는 샌프란시스코·시카고·플로리다 등지의 저축대부회사를 인수함으로써 종합금융그룹으로서 면모를 갖춰 갔다. 1998년 트래블러스를 합병했으며, 같은 해 시티그룹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시티은행은 CD(양도성예금증서), 변동이자율제 대출 등을 타 은행에 앞서 도입했는데 특히 CD는 은행의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으로서 혁명 그 자체로 평가받는다.

◆ 우리나라 최장수 기업은 두산 =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의미의 기업이 태동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후로 외국 사례에 비해 일천한 것임에는 부인할 수가 없다.

국내 최고령 기업으로는 올해로 창립 110돌을 맞는 두산을 꼽고 있다. 개화기 면직물 거상인 박승직은 1896년 8월 33세에 서울 배오개에 상점을 열고 날로 번창해 전국에 지점을 냈고 1925년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장남 박두병은 1937년부터 박승직 상점 전무이사로 취임해 경영을 시작했고 1946년 두산상회로 상호를 바꿔 오늘날의 두산그룹의 모태가 됐다.

1897년에 설립된 동화약품도 올 9월이면 109돌을 맞는다. 우리은행은 1899년 고종의 내탕금(황실자금)을 기초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올 1월 창립 107주년 기념식을 개최한 바 있다. 그 외 성창기업(90년), 경방(87년), 동양화재(현 메리츠화재)(84년), 삼양사(82년)등이 있으며 국내 상장사로 연혁 50년 이상은 70여 곳에 달하고 있다.

◆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선 = 장수 기업들의 공통적인 비결은 다양한 경영활동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뢰와 명성을 지키고 기업가정신과 기업이미지 구축에 노력함과 함께 고유의 기업문화를 형성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를 추구하는 데 있다고 요약할 수 있겠다.

윌리엄 오하라는 2004년 <성공의 세기>라는 저서에서 장수기업의 성공요인으로 첫째, 뚜렷한 기업목표 설정과 경제적 목표 추구를 통해 사회적 목표의 달성에 기여하고 둘째, 인간존중경영 아래 자본과 이익을 기업생존의 수단으로 삼으며 셋째, 장기적 관점에서 우수제품 생산을 통해 기업신뢰와 명성을 유지하고 시장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들었다.

케빈 케네디도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조건으로‘지배구조’와‘경영’을 꼽고 있다. 혁신, 제품교체, 전략, 제휴 등 경영 측면에서 부닥치는 4가지 위기와 학습문화, 리더십 DNA, 기업지배시스템, 이사회의 감시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 부닥치는 4가지 위기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탠퍼드 대학의 제리 포라스 교수는 BMW 등 유럽 기업의 경우에는 시장과 소비자의 존경, 미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친화성을 기업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최대자산으로 꼽았다.

무한 글로벌 경쟁 시대에 살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지금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경영자들은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못해 기업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도 날로 뒤쳐지고 있어 참으로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조동성 교수는 "장수기업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공헌에 매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이며 이를 통해 장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칼럼은 한국가스공사 사보 '코가스(KOGAS)'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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