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스마트시대 몸의 운명 - 한숙기 한스코칭 대표

입력 2014-01-2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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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영아 중 54.5%가 1세에, 유아 평균 2.27세에 스마트폰을 처음 만지는 것으로 최근 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평균 사용 시간은 0세는 33.45분, 1세는 32.84분, 2세는 29.56분, 3세는 34.42분 등이었다. 매일 1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만지는 영유아의 비율은 9.5%나 됐다. 아무리 스마트 시대라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유아 스마트폰 증후군이라는 신종 증후군까지 등장했다니.

성별, 국경, 문화, 연령까지 초월하는 스마트의 범람이 가져다주는 많은 폐해 중 몸의 소외는 아주 심각하다. 정보·지식 기반의 후기 산업시대에 인간의 지적, 인지적 능력은 이미 권력이 되었지만, 디지털 혁명은 인간 뇌의 편중된 기이한 발달을 낳고 있다. TV, 스마트폰 등을 통해 들어오는 환기 자극들은 생각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전두엽을 마비시키고 시각정보를 단순 처리하는 뒤쪽 뇌를 강화시킨다. 감각 입력에 반응하는 병렬적 뇌 신경망은 매우 발달하는 반면 한 가지 주제로 생각을 오래 하게 하는 수직적 구조는 퇴화하고 있다. 오로지 손끝과 시청각 자극 처리 부위만이 활성화된다. 호모쿨러스(대뇌피질의 부위와 담당 신체 부위를 연결해 신체부위가 뇌에서 차지하는 비중대로 그린 그림)를 디지털 시대에 다시 그린다면 엄지손가락만 부풀려진 기이한 소인간이 될 것이다. 이제 손마저 움직일 필요가 없어진단다. 말로 인식하는 스마트폰에 이어 동공만 움직여도, 생각만 스쳐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척척 만들어주는 디바이스가 속출할 전망이다. 그럼 우리 몸은 뭐하는 데 쓰지? 몇 년 후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에 우리 몸이 등장할지도.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집에서 김치를 담가 먹는 비율이 20년 전보다 28% 급감했다고 한다. 전화 한 통이면 저녁 한 끼가 배달된다. 클릭 서너 번이면 한 해 김장이 해결된다. 제사 음식, 아기 이유식, 빨래, 청소서비스, 경락마사지, 심지어 애인까지 배달 안 되는 것이 없다. 스마트 기술에 힘입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기본적 삶을 영위해 가는 데 문제가 없다. 삶을 위한 기초적 노동마저 생략돼 간다. 고민 없는 진로 선택, 밀땅 없는 연애, 디테일 없는 명제, 과정 없는 결론과 무엇이 다르랴?

사라지는 것이 노동만은 아니다. 체험도 사라졌다. 내 머리로 탐구하고 내 손으로 일궈 만들어 내기보다는 주어진 매뉴얼을 따르거나, 기성 해법을 콘트롤C, 콘트롤V를 한다. 느끼고 감동할 줄 모르니 사랑도 힘들다. 연예도 관념으로 한다. 디지털에서 얻은 이상화된 연예의 표상을 갖고 다가갔다가 현실 세계의 구체적 맥락 앞에 나가떨어진다. 그걸 극복하고 이겨낼 패기와 체력이 없다. 끈기도 없다. 에로스는 침묵하고 로고스만 떠다닌다. 관념적 욕망은 커가는데 그걸 이룰 신체의 능력은 미약해져 간다. 욕망과 능력 간의 간극이 점점 멀어져 가며 삶의 불안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 경험이 되어 간다. 우리 삶은 체화되지 않은 채 몸과 마음, 머리가 따로따로 가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한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로부터 정신과 신체가 분리되었고 신체는 종속적 지위로 밀려났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미운 사람과 밥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을. 살이 찌는 것은 삶에 잉여가 있다는 뜻이라는 것을.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은 병을 지혜의 결핍으로 정의한다. 몸의 질서는 마음의 질서를 가져오고 마음의 질서는 다시 몸의 질서로 화답한다. 몸과 마음은 서로 되먹임(feedback)되는 완벽한 구조이자 시스템이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최고의 시스템이다.

의학적 수치로 대변되는 내 건강상태, 몸매로 대표되는 내 신체조건, 이제 몸에 대한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자. 몸은 정신을 담고 있는 그릇을 넘어, 삶이 펼쳐지는 구체적 삶의 현장이다. 자연세계에서 생명의 제1법칙은 순환과 소통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해 선순환이 답이다. 기업과 사회의 선순환, 창조와 파괴의 선순환, 현재와 미래의 선순환, 가치창출과 분배의 선순환, 몸과 마음의 선순환이 우리 생명력을 살린다. 디지털 문명에 빼앗긴 몸의 권위를 회복해 몸을 복원하는 것이 곧 자아의 회복이자 우리 사회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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