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 달러화 가치 하락에 밀려 결국 연저점을 내줬다.
원화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과 엔화가치 하락(엔·달러 환율 상승)이 맞물려 '원고·엔저' 현상은 더 가속화, 한국의 수출 경쟁력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심리적 저지선' 무너진 환율…1,050원 하향 돌파할까
원·달러 환율은 9일 개장과 동시에 큰 폭으로 하락, 단숨에 연저점(달러당 1,054.3원)을 하향 돌파했다.
'미국 국채금리 하락→달러화 가치 하락→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의 원·달러 선물환율 하락'의 연쇄 작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미국 국채금리 하락은 미국이 지난주 발표한 고용지표가 테이퍼링(tapering·자산매입 축소)을 앞당길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고용지표 발표 직후 먼저 반영된 재료의 '되돌림' 현상이 나타났다"며 "롱스톱(달러화 손절매도) 물량이 많이 쏟아졌다"고 전했다.
연저점 방어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던 외환당국도 이날은 환율 하락을 가만히 지켜봤다.
결국,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5.0원 내린 달러당 1,053.0원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 새로 갈아치운 연저점은 1,052.0원으로 기록됐다.
환율의 연저점 하향 돌파는 환율 수준 자체보다는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시장에선 그동안 환율이 연저점을 앞두고 반등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심리적 부담이 있었다는 뜻이다. 심리적 부담에는 당국의 개입에 대한 경계감도 포함된다.
그러나 연저점 하향 돌파로 당국도 연저점 아래의 환율을 묵인하는 게 아니냐는 심리가 생길 수 있고, 이는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한 번 연저점을 갈아치운 환율이 달러당 1,050원선을 하향 돌파하느냐에 쏠리게 됐다.
애초 여러 전문가는 연내 1,050원 하향 돌파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런 예측이 보기 좋게 빗나갈 공산이 커진 셈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당 1,050원 근처에서 당국의 개입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경계감은 여전하다"고 전했다.'
◇원화·엔화가치 정반대 행보…수출 비상등 켜지나
원·달러 환율 하락은 엔·달러 환율 상승과 함께 놓고 볼 때 훨씬 더 의미가 커진다.
원화가치 상승과 달리 엔화가치는 하락해 원화·엔화가치가 반대로 움직이는 '원고·엔저'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연저점을 밑돈 이날 오후 3시29분 기준으로 엔·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0.11엔 오른 달러당 102.97엔에 거래됐다.
원화가치 상승(원고)과 엔화가치 하락(엔저)이 동시에 작용, 같은 시각 원·엔 재정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6.47원 내린 100엔당 1,022.05원에 거래됐다.
원·엔 환율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올해 안에 100엔당 1,000원대가 깨지는 게 아니냐는 예상마저 나오고 있다.
원·엔 환율은 2008년 9월 이후 줄곧 '네자릿수'를 유지했지만, 이런 추세라면 100엔당 900원대의 '세자릿수'로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원·엔 환율 하락은 원화가치가 엔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일본과 직접 경쟁하는 한국 산업의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출시장에서 한국의 상품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아베노믹스'에 본격적으로 채찍질을 가함에 따라 엔화 약세가 더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고, 엔·달러 환율이 올라가면서 원화강세·엔화약세 상황이 지속하면 한국 경제의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연평균 엔·달러 환율이 달러 당 11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됐을 때 제조업의 이익이 26조원 증발한다고 분석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엔·달러 환율이 100엔,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 됐을 때 수출 증가율은 2.0%포인트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이 1.8%포인트 하락한다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