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 간 관계의 수준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고위급 인사의 상호방문 횟수로 측정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친밀도이며, 또 다른 하나는 경제교역 및 경제지원 수준으로 계량 가능한 경제적 친밀도다.
한국전쟁 이후 '혈맹' 관계를 이어온 북한과 중국은 때때로 '일시적인 냉각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최고지도자를 포함한 고위층의 빈번한 왕래와 북한의 절대적인 대중 경제의존 현상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전반적으로 매우 긴밀한 우방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2년 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정권을 승계한 이후 북중 관계는 곳곳에서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다.
정권출범 3년째를 눈앞에 둔 현재까지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중국을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한 점이나 중국이 북한의 제3차 핵실험 강행에 대해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점이 대표적인 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할 때만 해도 중국은 북한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북중관계의 앞날도 순탄할 것으로 점쳐졌다.
당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였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되자 신속하게 축전을 보내면서 세습체제를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 역시 지난해 8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중국에 보내 황금평·위화도와 나선특구 공동 개발을 위한 두 개의 관리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합의토록 하는 등 중국 측의 '호의'에 화답했다.
북중관계에 정통한 베이징의 한 관측통은 김정은 정권이 출범 초기에는 '경제살리기'에 주력하려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국은 김정은 정권에 대해 출범 초에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으며, 이에 따라 북중관계도 '순항모드'를 나타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던 북중관계에는 북한이 지난해 12월 장거리로켓인 광명성3호를 발사하면서 균열이 생겼고 올해 2월의 제3차 핵실험으로 그 틈은 더욱 벌어졌다.
중국이 로켓 발사 직전 북한에 '신중한 행동'을 촉구한 것이나 핵실험 당일 '단호한 반대' 의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한 것은 사실상 양국이 '혈맹 관계'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관계'로 돌아섰음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중국은 실제로 핵실험 이후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의사를 밝히고 관련 정부부처에는 대북제재 성실이행 공문을 발송하는 등 다양한 대북 '채찍'을 휘둘렀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추진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임에 따라 대북제재의 '구멍'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기존의 중국 태도와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중국이 핵실험 여파로 '북한 근로자에 대한 신규 취업 허가도 보류했다',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을 중단시켰다'는 등의 관측과 설들이 북중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중국의 이런 '냉랭한 태도'에 대해 북한은 지난 5월 핵심실세인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특사로 보내 "(북핵) 6자회담 등 각종 형식 대화를 원한다"고 밝히며 관계복원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성과는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당시 중국을 방문해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고 돌아온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은 "그(최룡해)를 맞는 (중국의) 태도는 이전과 달랐다"며 "최룡해와 시 주석과의 만남도 귀국 직전에야 어렵사리 성사됐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북중관계는 반년 가량 이어진 냉각기를 거쳐 지난 7월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 겸 공산당 정치국원의 방중을 계기로 서서히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리 부주석은 북한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7월27일) 60주년 행사에 참석하며 지난해 11월 리젠궈(李建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북 이후 사실상 끊기다시피한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 재개됐음을 알렸다.
올해 상반기 주춤했던 북중 경제협력도 하반기에는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상반기 북중무역 총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가량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지만 1∼9월 총액은 전년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그럼에도, 양측이 핵실험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무엇보다 올해 내내 수시로 흘러나온 '김정은 방중설'이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결국 핵실험 국면에서 생긴 북중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해석이다.
특히 적잖은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정보 당국을 통해 제기된 '장성택 실각설'이 사실이라면 가까운 미래에 '김정은 방중'이 실현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용주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중국의 새 지도부가 북중 관계를 '정상적인 국가간 관계'로 이끌어가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다 중국 내에서는 북한을 '자산'보다는 '부채'로 보는 인식이 점점 확산하고 있기 때문에 북중관계가 지금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형태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내 대북소식통은 시진핑 체제 출범과 맞물려 강행된 핵실험으로 북중관계는 침체에 빠졌다고 전제한 뒤 "최근 관계 회복 분위기가 감지되는 것은 맞지만, 정상화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그런 (혈맹) 관계보다는 정상적인 국가간 관계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