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와주겠다” 서포터형 스타일…M&A 통한 사업 다각화로 성장 일궈
“나를 따르라 노(NO), 내가 도와주겠다 예스(YES).”
‘샐러리맨의 신화’ ‘인수·합병(M&A)의 귀재’ ‘미다스의 손’ ‘승부사’ 등 수많은 수식어가 차석용(61) LG생활건강 부회장을 따라 다닌다. 일반 사원으로 출발해 LG생활건강 최초 부회장 자리까지 오른 그를 두고 밖에서는 과감한 도전과 변화를 즐기는 ‘스파르타식 리더십’의 경영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사내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나를 따르라’의 리더십이 아닌 ‘내가 도와주겠다’의 ‘서포터형 리더십’이라고 임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관리와 통제의 과거형 리더십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경영철학이다. M&A와 도전을 중시하는 ‘스파르타’ 스타일로 LG생건의 외형과 내실을 키웠다. 하지만 이같은 성공은 탈권위형 최고경영자(CEO)를 자청하면서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개방형 리더십 덕분이다. 겉과 속이 다른(?) 차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사장 취임 이후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35분기 연속 성장이란 경이적 기록을 이뤄냈다.
◇탈권위형 CEO… ‘리더’ 아닌 ‘치어리더’= 차 부회장의 집무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필요하면 거리낌없이 들어가 차 부회장에게 보고하는 것이 일상적인 풍경이다. 차 부회장은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고 별도 통보 없이 혼자 택시나 KTX를 이용해 현장을 찾는 것을 즐긴다. 간다고 미리 알려 사업장이나 연구소에서 의전과 자료 준비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직원들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제품 이름부터 디자인 등 세세한 부분까지 직원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상의해 의사결정을 한다. 이 모든 것은 소비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편리함을 주는 게 회사의 사명이고, 그러려면 직원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디어를 다듬고 격려하는 것이 리더의 진정한 책무라는 그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차 부회장은 “회사의 리더는 ‘리더’보다는 ‘치어리더’가 돼야 한다”고 항상 강조한다.
옷을 하루만 입고 세탁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점에 착안한 ‘한입세제’는 그의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올 초 내놓은 남성 화장품 ‘까쉐’도 개발 단계부터 차 부회장의 공이 컸다. 완제품이 나오기 전에 자신이 직접 발라 보고 느낌도 전달한다. LG생건이 출시하는 전 제품 임상시험의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작은 부분까지 챙겨 직원들이 힘들 법도 한데, LG생건인(人)은 모두 부회장의 참견(?)을 반긴다. ‘나를 따르라’가 아닌 ‘내가 도와주겠다’는 개방적 스타일의 경영철학이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나아가 성과를 창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진정한 승부사= 차 부회장의 경영성과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 바로 ‘차석용 효과’다. 차 부회장은 지난 2005년 LG생건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5년 동안 매출 3배, 영업이익 5배, 주가 15배를 올렸고 27분기 연속 두 자릿수 이상 실적 성장을 일궈냈다.
취임 첫해인 2005년 LG생건의 매출은 9678억원, 영업이익은 704억원이었지만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조8962억원, 4455억원으로 불어났다. 실적 향상에 비춰 ‘차석용 효과’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11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LG생건에서 부회장이 탄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회장 취임 후에도 ‘차석용 효과’는 계속됐다. LG생건은 올해 3분기 매출 1조1518억원, 영업이익 1455억원, 당기순이익 1171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3%, 10.8%, 29.4% 증가했다. 매출과 당기순이익은 사상 최대 실적이며, 매출은 2005년 3분기 이후 33분기 연속, 영업이익은 2005년 1분기 이후 35분기 연속 성장한 수치다.
성장의 밑거름은 M&A을 통한 사업 다각화다. ‘사람은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는 맹자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매일 절박한 심정으로 위기를 돌파한다는 차 부회장. 그는 취임과 동시에 사업 다각화에 주력했다. 그가 보여준 M&A 행보도 거침없었다.
코카콜라음료를 지난 2007년 사들였고 2009년에는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에는 더페이스샵과 한국음료, 2011년에는 해태음료, 2012년에는 바이올렛드림 화장품 사업과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스테파니, 올초에는 일본 건강기능식품 업체 에버라이프를 인수했다.
차 부회장은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되듯 서로 다른 사업 간 교차지점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창출된다”며 “기존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 사이에는 교차점이 한 개뿐이지만 음료 사업의 추가로 교차점이 세 개로 늘어나면서 회사 전체에 활력이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여름에 약한 화장품사업과 여름이 성수기인 음료사업이 서로의 계절 리스크(위험)를 상쇄, 보다 안정적 사업구조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멋진 실패는 ‘상’, 평범한 성공은 ‘벌’= 차 부회장은 미국 P&G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전문 경영인으로 성장하면서 자기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만큼 특별한 인재관을 갖고 있다. 그의 인재관에는 인생경험이 담겨 있다.
차 부회장은 기업의 성공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차별화(Different)’된 ‘더 좋은(Better)’ 제품과 서비스로 고객과 ‘특별한(Special)’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의력은 아무 고민 없이 가만히 있다가 어느 순간 떠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일에 대한 수많은 고민이 쌓이고 쌓일 때 응축된 생각이 뛰어난 창의력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회사에서는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갖는 것이 편안한 것이다”고 말한다. 편안한 나날이 쌓이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항상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자신을 계속 채찍질할 때 발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직장에서는 건전한 불만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일에 문제의식을 갖고 ‘나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획일화되기 쉬운 회사원의 모습을 경계한다면 개성 있고 차별화된 당당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 부회장은 모든 직원에게 “멋진 실패에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 벌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변화를 두려워 말고 새로운 일에 과감히 도전하라는 당부다. 일시적 성공에 안주한 채 변화하지 않는다면 결국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를 중시하는 차 부회장이 반대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꼽는 것이 정직과 투명함이다. 투명함이란 둥근 케이크처럼 어떤 각도에서 보건 어두운 면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뼛속까지 드러내는 정직성이야말로 업무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한 방향으로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재능만 믿고 자만하고 안주하는 이들보다 결국 멀리 갈 수 있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