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전범 장례식 무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로마에서 수백 명을 학살하고도 끝내 사과를 거부한 나치 전범이 죽은 뒤 묻힐 곳을 찾지 못했다.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지난 11일 100세 나이로 숨진 나치 전범 에리히 프리프케가 그 주인공. 고향인 독일과 50년 동안 살았던 아르헨티나에서도 그의 주검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의 시신은 16일(현지시간) 저녁 로마 인근 군 비행장에 방치된 상태다.
에리히 프리프케는 15년의 가택연금 끝에 지난 11일 100세 나이로 숨졌다. 당초 그의 장례식은 15일 로마 인근 알바노시(市)에 있는 극우 세력의 신학교에서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수 백명의 항의 시위대가 몰리면서 무산됐다.
시위대는 운구행렬을 향해 "암살자!", "시신을 쓰레기장에 버려라" 등의 욕을 했고, '프리프케 교수집행인'이라는 글이 적힌 플래카드도 보였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해산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검은색 밴 차량에 실린 프리프케 유해는 이어 로마 인근 군 비행장 근처로 옮겨져 독일로 가는 방안을 모색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 오갈곳이 없는 신세가 됐다.
나치 무장친위대(SS) 대위 출신으로, '아르데아티네 동굴의 백정'으로 불렸던 프리프케는 1944년 3월 로마 외곽 아르데아티네 동굴에서 유대인과 어린이 등 335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규모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 남부의 관광명소 바릴로체로 도망쳐 40년 이상 호텔지배인으로 살다 1995년에야 이탈리아로 송환됐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 받은 그는 고령과 건강문제 때문에 수감 대신 자신 변호사의 로마 집에 연금돼 있었다.
프리프케는 생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고 어차피 당시 세계 여러 곳에서 민간인이 숨졌다"는 변명만 되풀이해 분노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