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봉사가 스펙이 되는 사회- 한성안 영산대 교수

입력 2013-09-0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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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그 때문에 인간은 싫든 좋든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복잡한 상황에 처한다. 어떤 이는 타인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도 하며, 다른 이는 가만히 있는 사람을 지배함으로써 쾌감을 얻기도 한다. 경제학적으로는 부등가교환이 이루어지는 관계며 이기주의가 팽배한 관계다. 이때 사회적 관계는 타인을 자기욕망 충족의 대상으로 삼는 도구일 뿐이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타인을 기쁘게 하려는 사회적 관계도 있다. 받은 것을 되갚아 줌으로써 타인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등가교환과 호혜적 관계로 정의될 수 있다. 나처럼 은혜도 제대로 갚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나, 먹고 튀는 정글사회에서는 그 정도의 되갚음마저도 진귀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되갚음을 바라지도 않고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타인을 기쁘게 하고자 하는 관계도 있다. ‘봉사’의 사회적 관계다. 봉사도 부등가교환이다. 하지만 빼앗거나, 먹고 튀는 관계가 아니라 타인에게 자신의 귀한 것을 주고 그들을 섬긴다는 점에서 앞의 것과 다르다.

그것은 ‘이타주의적 부등가교환’이다. 이런 유형의 교환, 곧 봉사행위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 겸손의 미덕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지 않고 타인을 섬기지 않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 더 나아가 사랑과 연민의 감정, 그리고 겸손의 미덕이 결여된 봉사는 진정한 봉사와 더더욱 멀다. 예컨대, 다른 곳에서 이익을 취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봉사가 아니다. 또 어떠한 사랑과 연민도 없이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수행하거나 기계적으로 행하는 것도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것을 내어주면서 오만한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도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것들은 봉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들의 처지를 오히려 비참하게 만든다.

어제 한 학생이 상담을 위해 연구실을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몇 차례 얘기를 나눈 적도 있어 반가웠다. 내 과목을 수강했는데 방학 중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가는 바람에 과제를 제출하지 못해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이다. 평소 성실하며 바른 학생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킨 후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2대1의 경쟁을 통과한 40명이 간 곳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였다. 깨끗하게 단장된 마닐라 시내 어느 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버스는 외곽으로 이동하였다. 외곽이라 해봤자 다리 하나 건넌 것밖에 없을 정도로 마닐라시에 붙어있었다. 마닐라시와 벽으로 차단된 그곳에는 찢어지게 가난한 빈민들이 살고 있었다. 비를 가릴 수 없는 움막에서 아이들은 개, 고양이, 돼지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변이 마려우면 움막 옆 막힌 하수구로 간다. 그야말로 돼지우리와 다름없더라는 것이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그들에게 봉사하면서 뭘 느꼈는지 물어 보았다. 첫째로는 우리나라가 살긴 잘 산다는 것을 느꼈고, 둘째로는 나도 가난한 축에 속하지만 이런 가난 속에 처하지 않았으니 다행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상대적 행복감 때문에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어떻게 느꼈을 것인지 궁금했다. 대다수 학생들은 이러한 환경에 별로 놀라지 않고 묵묵히 봉사활동을 수행하더라는 것이다. 예상치 않은 환경에 자신은 적지 않게 놀랐지만 대부분은 이미 각오가 되어 있는 것 같더라는 것이다. ‘아, 정말 훌륭한 학생들이구나!’

하지만 그의 설명은 뜻밖이었다. 그들의 봉사활동 목적은 스펙을 쌓는 거란다. 다른 사람들의 스펙이 워낙 빵빵하니 특별한 체험 스토리가 담긴 ‘독한’ 스펙이 필요한데, 이번 봉사활동만큼 경쟁력 있는 스펙은 없다는 것이다. 봉사가 스펙이 되는 세상, 그것도 독한 봉사가 경쟁력 있는 스펙을 안겨주는 세상! 적잖이 놀랐지만 적어도 호혜적 등가교환이니 경제학적으론 납득이 된다.

하지만 겸손의 미덕은 고사하고 어떤 사랑과 연민도 담겨있지 않는 활동을 ‘봉사’로 확인해 급기야는 증서까지 수여하는 세상에 대해 심란해지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와 ‘진정한’ 봉사의 의미에 대해 함께 담소하면서 헤어졌다. 문을 나서는 청년의 얼굴은 미소로 빛나고 있었다. 단지 상대적 행복에만 도취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좋은 학생은 역시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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