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기적 새로 쓰자]강봉균 “기업 숨통 터줘야 투자 살아나”

입력 2013-08-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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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무리한 추진에 투자의욕 꺾여… 속도조절해야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복지공약 실천을 위해 증세를 한다면) 부가가치세율을 10%에서 12% 정도로 올려 연간 14조원의 세금을 확보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인권 기자 bink7119@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경제의 저성장 극복을 위한 최대 관건을 기업투자 의욕 제고로 꼽았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경제민주화 정책의 추진 속도·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동시에 규제 축소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나서야 한다고 진단했다.

강 전 장관은 최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저성장 장기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재정건전성 유지의 중요성도 역설하면서 정부를 향해 “‘증세 없는 복지’라는 이율배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증세 필요성을 설득하고 국민들이 동의하는 증세 수준에 맞게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라”고 조언했다.

증세 방안으로는 부가가치세 2% 인상안을 제시했으며, 당장 올해 세수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5조원 이상의 국채발행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깊다. 극복 방안은.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7% 수준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평균 3% 수준으로 성장률이 저하돼 지난해와 올해엔 3% 미만으로 추락하고 있다. 앞으로도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현상, 가계저축 고갈과 가계부채 증가, 정부와 국영기업의 국가 채무 증가, 민간기업의 투자의욕 감퇴 등으로 한국경제의 저성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나라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빠지지 않도록 글로벌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하기 위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규제 축소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이뤄야 한다. 공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간섭을 줄이고, 고비용·저효율 구조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동아시아 경제공동체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성과와 경제활성화 전환에 대해 어떻게 보나.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면서 재벌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 재산증여와 불공정거래 폐단 시정, 하도급업체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 탈취 등 ‘갑의 횡포’ 규제 장치 마련, 영세 자영업자 보호장치 마련 등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들의 성장 자체를 억제하려는 의도 아래 순환출자 금지 같은 지배구조 개선을 무리하게 추진해 기업투자 의욕을 약화시킨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경제민주화 입법의 속도와 우선순위를 조절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 저성장 극복의 최대 관건인 기업투자 의욕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한다. 세무조사, 불공정거래 조사 등 공권력 행사가 선의의 기업들을 힘들게 하는 측면도 유의해야 한다. 경제성장의 활력이 약화돼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되면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돼 경제민주화의 효과를 상쇄할 우려도 있다.”

△세수 펑크 우려와 함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해 1차 추경 때 예상했던 12조원보다 7조~8조원의 추가 세수 결함이 불가피할 것이다. 정부가 예산낭비요인을 찾아내 세출삭감을 먼저 추진하고 국채발행도 5조원 이상 추가할 필요가 있다. 또 복지확대는 증세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실천이라는 이율배반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증세 필요성을 설득하고, 국민들이 동의하는 증세 수준에 맞게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복지공약의 우선순위 조절은 모든 국민에 대한 보편적 복지보다는 중산층 이하에 대한 맞춤형 복지로 출발하는 방법, 복지프로그램의 도입 시점을 임기 5년 중 탄력 있게 조절하는 방법 등이 있다. 증세 방식은 실효성이 불확실한 고소득층 탈세조사 강화보다는 계층 중립적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0%에서 12% 정도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2%를 올리면 연간 약 14조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 유럽 복지국가들도 부가세율의 단계적 상향으로 복지확대를 뒷받침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약속 대통령’ 이미지는 민생경제를 호전시키는 데 기여하면서 지켜야 한다. 중국·미국과 정상회담을 잘해서 국민들에게 얻는 점수는 유효기간이 짧다. 먹고사는 문제가 좋아지지 않으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는 유연해야지, 정해놓은 룰대로만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현오석 경제팀을 평가한다면.

“안정형·순응형이어서 청와대가 중심이 돼 변화와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 정부 출범 6개월밖에 안 된 지금 업적을 평가하긴 이르지만, 지금까지는 대선 때 국민과 약속했던 복지공약, 경제민주화에 몰두해 경제활성화 노력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사정당국의 재계 압박 강도도 세졌다는 지적이다.

“검찰과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권력기관의 공권력 행사가 정권교체기마다 강화돼 민심 전환을 도모하려는 것이 그간 우리나라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경제발전 단계는 선진국 진입 수준이기 때문에 정부의 공권력 행사는 정권교체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일관된 원칙과 공정성,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없을 것이고 시장경제 체제도 확립된다.”

△정치권이 경제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국회가 포퓰리즘에 빠져 인기영합적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 입법 등에 몰두해 재정건전성 수호나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일엔 소홀한 경향이 있다. 여야는 국민들의 정치적 신뢰 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예산은 낭비를 막는 데 주력하면서 재정건전성을 엄중 감시하고, 입법활동도 인기영합적 규제보다는 행정의 공정성, 투명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

▲ 강봉균 전 장관은 누구인가

정통부 장관·청와대 수석 등 지내… 보편적 복지 비판 ‘중도보수’

강봉균 전 장관은 관료 생활 32년 동안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 등 굵직굵직한 자리를 거쳤고, 이후 정계에 진출해 3선의 중진의원 반열까지 올랐다. 이제는 정계를 떠나 야인이 됐지만, 정치·경제 문제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강 전 장관은 1969년 행정고시(6회)에 합격해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강경식·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기획원이 배출한 한국의 대표 경제관료로 꼽힌다.

김영삼 정부 시절 경제기획원 차관,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냈다.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문제분석 능력이 뛰어나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내면서 경제관료로서 전성기를 보냈다.

정계에 입문한 건 2000년이다. 16대 총선에서 경기 분당에 나섰지만 낙선, 2002년 8·8 재보궐선거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당선돼 내리 3선을 했다.

2002년 대선 때엔 노무현 후보의 경제분야 공약을 주도하고 주요 경제정책을 조율했으며, 집권 후엔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도 지냈다.

민주당 내 중도보수 성향의 온건파로 분류됐던 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찬성하고 보편적 복지를 비판하는 등 당의 입장과는 다른 ‘소신’도 적극 피력했다. 하지만 이는 지난해 총선에서 그가 공천장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됐다.

그는 공천 탈락 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여야가 정권을 잡는 데만 혈안이 돼 경제 안정과 발전기반을 위협하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인들은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고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정치권의 포퓰리즘 공약 경쟁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포퓰리즘 전쟁이 심화되자 전직 경제관료, 학계·언론계 인사 100여명과 함께 ‘건전재정포럼’을 발족, 현재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장 후보로, 정부 첫 조각 때엔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다.

△1943년 전라북도 군산 출생 △서울대 상대 학사 △행정고시 6회 △미국 윌리엄스대학원 경제학 석사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한양대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차관보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경제수석비서관 △재정경제부 장관 △KDI 원장 △16~18대 국회의원 △건전재정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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