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기적 새로 쓰자] 기업 규제가 경제민주화?… 정상적 경영활동까지 위축

입력 2013-08-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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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강화’ 입법 경쟁 올해만 500여개 법안 새로 생겨…“투자·고용 악영향 ‘기업 경쟁력 약화’ 불러올 수도”

정치권이 쏟아내고 있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재계가 아우성이다. 포퓰리즘에 편승한 입법 경쟁이 계속될 경우 과도한 중복규제와 투자심리 냉각으로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 역시 국내외 경기가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으로 반기업 정서가 확산돼 기업의 투자의지가 더 꺾이면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줄 것을 경고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이 자칫 기업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경우 법안이 담고 있는 좋은 취지마저 퇴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규제 법안에 얼어붙은 투자·고용 더 꽁꽁 = 정치권의 과도한 경제민주화 입법이 기업의 투자 위축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법 상당수가 기업규제 법안으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이익창출이 투자확대를 낳고, 고용창출로 이어지는 산업 선순환 구조가 붕괴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이 같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규제왕국’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정부와 정치권을 성토했다. 이 부회장은 “세계 각국 정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책 경쟁을 거의 전쟁 수준으로 전개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기업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규제 완화는 국가 재정이나 물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투자를 촉진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수단”이라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9년 1만1000건이던 규제가 작년 1만4000건으로 늘었고 올해도 5개월 만에 900개가 넘는 규제가 새로 생겼다”고 지적했다.

급기야 기업들은 올해 신규채용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월 전경련이 600대 기업 중 157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39.5%가 “지난해보다 신규채용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반면 지난해보다 신규채용을 늘리겠다는 기업은 14.0%에 불과했다.

최근 정부가 기업들에 투자 활성화를 주문하며 경제민주화 속도 조절에 나서겠다고 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취임 후 넉 달여 동안 각종 경기 대책을 쏟아낸 현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1박2일간 ‘경제현장’ 방문에 나서며 재계 달래기에 나섰다. 경제 살리기 첫 방문지도 투자가 한창인 생산 현장이었다.

현 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하반기에는 기업 활성화에 역점을 두겠다”고 공언했다. 또 “상반기엔 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 기반 마련에 집중했다면, 하반기에는 기업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경제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너도나도 경제민주화법 발의…정계 ‘포퓰리즘’ 주의보 = 국가정보원 국정조사 파행 등을 이유로 민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경제 살리기 입법 논의가 더욱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크다. △해외자금 국내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외국인투자촉진법 △중소기업 전용시장인 코넥스시장 투자 활성화를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등은 하반기 경제 살리기를 위해 시급히 통과시켜야 할 법안으로 꼽히지만 여야의 극한 대립 탓에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한 상태다.

정치권의 이견으로 인해 경제민주화법 처리가 늦어지기도 한다. 당정청 모두 9월 국회 입법과제 및 세제개편안에서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활성화’ 기조를 분명히 내세우고 있는 반면, 야당은 ‘경제민주화 실종’이라며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다.

이미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거 처리되면서 재계엔 비상이 걸린 상태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법률 일부개정안’(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은 경쟁 제한성 입증 없이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 총수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규제가 가능해질 예정이다.

프랜차이즈법 개정안은 가맹본부가 매출 부풀리기를 하면 허위·과장 광고 혐의로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했으며,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지분 한도를 현행 9%에서 4%로 낮추는 금융지주회사법과 은행법 개정안(금산분리 강화법)도 통과됐다.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경제민주화 법안이 줄줄이 통과된 데 대해 “향후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기업들이 안심하고 기업경영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논평을 냈다.

이런 풍토는 정치권이 경제민주화 입법 경쟁에 빠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크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지난 6월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경제만 잘 돌아갈 수 있으면 백번이라도 경제민주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우리 경제의 탈출구와 활로가 될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경제민주화 입법 경쟁이 9월 정기국회에 또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 처리와 금융회사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법안 등 5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다 연기된 민감한 사안들이다. 따라서 하반기 들어 미약하나마 회복 기미를 보이는 경기 회복의 불씨가 정치권의 입법 경쟁과 정부의 속도조절론, 재계의 반발 등 총체적 공방전으로 자칫 사그라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에 대해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서 있다. 그렇다고 과잉 입법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과잉 입법은 적절하지 않다는 여론이 강하다. 더 이상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에 한국경제가 멍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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