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설립 문근영·유준상·한혜진 등 ‘둥지’…매니저 전문·세분화
서울 청담동 학동사거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 골목을 지나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붉은색 기둥이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바로 나무엑터스다. 사무실 입구 한쪽 벽면에는 소속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들의 미니포스터가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다른 벽면에는 소속 배우 30여명의 사진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우리가 흔히 방송에서 접하는 이미지와 사뭇 달라 눈길을 끈다. 또 다른 벽면에는 소속 배우들이 받은 상패와 트로피가 전시돼 있고 15년 이상 묵은 비디오테이프와 드라마·영화의 시놉시스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반대편 벽면에는 현재 소속 배우들이 출연 중인 드라마와 영화 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나무엑터스 사무실은 마치 엔터테인먼트의 역사박물관을 보는 듯했다. 그곳에는 그들의 히스토리가 그대로 녹아져 있었다.
나무엑터스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보유한 굵직한 매니지먼트사다. 문근영, 유준상, 한혜진, 김주혁, 신세경, 지성, 김아중, 김소연, 김지수, 김효진, 도지원, 전혜빈 등 38명의 배우가 나무엑터스에 둥지를 틀고 있다.
2004년 김종도 대표는 자본금 5000만원으로 나무엑터스를 세웠다. 소속배우 고(故) 이은주가 주연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폭발적 흥행 기록을 세웠다. 문근영은 영화 ‘어린신부’(2004)로 340만명의 관객을 동원, 큰 인기를 누렸다. 이 밖에 영화 ‘여자 정혜’ 김지수, ‘주홍글씨’ 이은주, SBS 사극 ‘토지’ 도지원·신세경 등 소속 배우들이 승승장구하자 나무엑터스는 회사 설립 1년 만에 자본금 4억원을 증자, 탄탄한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2005년에는 송지효, 김태희, 김강우를 영입했다. 문근영과 박건형 주연의 영화 ‘댄서의 순정’은 3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소속 배우들의 입지를 다졌다. 2007년 나무엑터스는 장르의 다양화를 시도한다. 드라마와 스크린보다 관객들과의 직접적 소통이 배우들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가 따랐던 것이다. 배우 유준상이 뮤지컬 ‘천사의 발톱’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그 결과 제1회 뮤지컬 어워즈 연출상 외 3개 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연극까지 확장했다. 홍은희가 ‘클로저’ 주연을 맡았다. 김효진, 박건형, 조동혁, 한정수 등 소속배우들은 ‘무대가 좋다’에 함께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많은 톱 배우들의 영입과 사업 다각화에도 불구하고 2008년 9월 나무엑터스는 위기를 맞는다. 당시 발생한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매니지먼트 사업도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수입의 60~70%를 차지하던 광고매출이 반토막 수준으로 하락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9년 4월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도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나무엑터스는 그동안 배우와 쌓아온 두터운 신뢰 덕분이었을까. 어려운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사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었다.
2009년 나무엑터스는 매니지먼트사의 체계적 시스템화를 시도했다. 매니저 업무를 전문영역으로 세분화해 나간 것이다. 한 배우를 1인 기업화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는 구도로 방향을 틀었다. 기획 매니저, 해외프로모션 매니저, 현장 매니저, 홍보 매니저, 프로모션 매니저 등 완벽하게 역할 분담을 했다. 배우 1명당 최소 10여명의 매니저가 함께 업무를 수행했다. 이 때문에 나무엑터스는 평균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40여명의 매니저들이 배우들과 현장을 함께 뛰면서 호흡한다. 철저하고 정확한 관리 시스템 덕일까. 나무엑터스에 소속된 배우들은 평균 10~15년 이상을 그곳에 몸담고 있다. 문근영은 한 번도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회사와의 신뢰가 두텁다. 신세경도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나무엑터스에 들어와 약 10년간 함께해 왔다.
꾸준한 사업추진과 적절한 위기 대처 능력으로 2012년 나무엑터스는 총 매출 180억원에 7억원의 이익을 냈다. 김동식 나무엑터스 CEO는 “배우 전혜빈과 패션사업도 추진 중이다”며 “걸음마 단계이기는 하지만 현재 운영 중인 바이헤븐 인터넷 쇼핑몰을 필두로 브랜드 론칭을 목표로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역스타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MBC ‘여왕의 교실’에서 열연 중인 배우 김향기와 초등학교 5학년인 노정의가 올 초부터 트레이닝 중”이라며 “포스트 문근영와 신세경을 찾기 위해 아역배우에게도 열정을 쏟는다”고 말했다.
[연예산업파워를 찾아서 ⑪나무엑터스]김종도 대표 “배우와 함께 뛰며 소통에 힘쓰는…난 페이스메이커”
“나는 페이스메이커다. 배우들과 같이 뛰고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당겨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아직도 매니저다. 월급이 조금 더 많은 매니저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배우들과 늘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자판을 두드리면서 계산하는 매니저가 아닌 소통을 많이 하려고 애쓰는 매니저다. 배우들한테는 스타가 되라는 소리보다 많이 찾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나무엑터스 사무실에서 김종도 대표를 만났다. 화이트 셔츠에 블랙 정장팬츠로 깔끔하면서 세련된 이미지를 풍기는 그에게서 한 회사를 이끌어 나가는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1992년 김 대표는 전공을 살리기보다 새로운 직업에 대한 갈망으로 상경했고, 매니저 일에 뛰어들었다. 로드매니저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온 김 대표는 매니지먼트 사업에 종사한 지 어느덧 22년차가 됐다. 그는 스스로 대표라는 직함을 버리고 여전히 매니저라 불리길 원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매니지먼트를 해오면서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다고 이야기할 부분은 없다. 매니저는 사람을 관리하는 직업이고 한 배우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이다.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동반자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배우들이 조카 같을 때도 있고, 동생 같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매니지먼트 산업 구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특정 회사를 빼고는 지금 다 힘들다. 매니지먼트 산업 구조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지 않다”며 “한국 시장이 너무 작다. 시장을 넓혀야 한다. 해외시장을 어떻게 키울지 늘 생각한다”고 현재 매니지먼트 산업의 문제와 나무엑터스의 중장기 목표를 밝혔다. 김 대표는 히스토리를 갖고 싶어했다. 그는 배우들에게도 히스토리를 강조한다. 김 대표는 히스토리 안에 녹아 있는 다양한 경험들이 바탕이 돼야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 대표는 “히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내 꿈이다. 나무엑터스가 20년을 넘어 30년, 그 이후까지 차곡차곡 히스토리를 쌓아 나가고 싶다. 그것이 바로 나무엑터스가 나아갈 방향이고 엔터테인먼트계에서의 차별성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