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섹시 전쟁, 이래도 괜찮은가 (유혜은의 롤러코스터)

입력 2013-06-2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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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TV를 켰다. 지상파 음악 방송 프로그램이 흘러나왔다. K팝을 선도하는 아이돌 그룹의 무대가 쉴 새 없이 펼쳐졌다. 인형같은 걸그룹들이 화사하게 웃으며 화면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저 친구는 스무 살… 이 친구는 스물 한 살…’ 이제 막 미성년자 꼬리표를 뗀 멤버들이 손바닥만한 바지를 입고 눈앞에서 섹시 댄스를 췄다. 매끈한 다리는 여자가 봐도 아찔했다. 의상만큼이나 거침없는 동작이 이어졌다. 움직임을 부지런히 따라가는 카메라가 민망했다. 노랫말에는 성적인 메시지가 가득했다.

마냥 걸그룹을 탓하기도 어렵다. 아이돌 붐을 타고 멤버 이름은커녕 그룹 이름조차 외우기 힘들만큼 많은 아이돌이 쏟아지고 있다. 존재감을 알리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이다. 섹시 콘셉트가 지겹다는 반응이 끊임없이 나와도 여전히 성적인 소구는 언제 어디서나 효과적이다. 가릴 때보다 벗을 때, 멈춰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 한 번이라도 눈길이 더 간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이 방송을 보는 시청자가 모두 성인이 아니란 사실이다. 프로그램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매겨졌지만, 사실상 아무런 힘이 없다. 한창 주변 환경에 크게 영향 받을 어린이와 청소년이 도를 넘은 자극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다. 반짝거리는 스타를 동경하고 모방할 시기이다. 이들에게 매스미디어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지상파 TV의 파급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며칠 전 초등학생 조카가 낭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수련회 때 장기자랑을 한다며 어느 걸그룹의 춤을 추면 가장 좋을지 물어왔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전화기를 들고 눈만 껌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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