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넘버 1’ 상품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윈도95’를 발표한 후 가장 치명적인 직격탄을 맞은 기업은 애플이었다. 당시 윈도를 탑재한 인텔 기반의 PC가 급속도로 시장을 장악하며 애플은 위기를 맞았다. 많은 이들이 ‘애플의 위기’를 직감할 무렵인 1997년,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가 복귀했지만 그 누구도 ‘혁신의 시작’ 을 감지하지 못했다.
잡스는 우선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가 많았던 제품군을 줄였다.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순화된 제품군과 함께 유통망도 줄였다. 그 결과 예상을 깨고 조금씩 회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혁신적 디자인의 MP3플레이어 ‘아이팟’이 대박을 터트린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 일이다. 애플은 또 다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탄생 5년 만에 6800만대가 팔려나간 아이팟은 경영난에 허덕이며 도산 위기에 직면했던 애플을 기사회생시킨 효자 제품이 됐다.
벼랑 끝으로 몰린 기업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크게 3가지 요건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위기의식을 갖고 양적성장을 이끌어낼 최고경영자(CEO) 또는 총수 △마른 수건도 짜낼 정도의 기업개선 작업 △시장에서 상품 및 가격경쟁력을 지닌 1등 제품 등이 갖춰져야 한다. 실제로 애플은 이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며 ‘세계 10대 기사회생 기업’ 가운데 1등 기업으로 손꼽혔다. 시장에서 1등을 달리는 제품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애플에 이어 기사회생 기업 2위인 IBM도 예외는 아니다. 1970~1980년대 컴퓨터산업의 주류였던 IBM은 1990년대 들어서며 주요 사업이었던 메인프레임 분야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누구나 ‘IBM은 이제 끝났다’라고 말했다.
수년간의 누적 적자로 벼랑 끝에 내몰린 IBM 경영진은 회생을 책임질 수장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었고, 결국 IBM 최초로 외부에서 CEO ‘루 거스너’를 영입한다.
거스너는 취임과 동시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동시에 수익원의 다각화를 추진하며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고 제품보다는 IT 종합서비스로 사업영역을 바꿨다. 결과적으로 루 거스너 취임 이후 어마어마한 손실은 흑자로 전환됐다.
결국 IBM도 CEO와 주력산업 전환 등 기업을 살리는 요건 2가지를 충족시킨 셈이다.
아이팟으로 대박을 터트려 위기를 모면한 애플의 회생 뒤에는 앞을 내다본 제품 경쟁력이 뒷받침됐다. 이른바 ‘리스트럭처링’ 또는 ‘리엔지니어링’ 전략으로, 이러한 제품 전략 뒤에는 한발 앞서 미래를 내다보는 선구안이 반드시 수반되곤 한다.
사실상 미래를 내다보며 1위 제품으로 혁신을 일으킨 기업을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1993년만 해도 그저 그런 2류, 3류 취급을 받았던 삼성의 20년 뒤 모습은 1위 제품으로 대변혁을 일으킨 좋은 사례다.
당시 삼성은 신경영을 시작으로 대변신을 시도했고 TV, 반도체, 휴대폰 등 세계 1등 제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삼성그룹의 세계 1위 제품은 삼성전자의 D램과 메모리반도체 2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경영 선언 이후 판은 뒤집혔다.
지난해 기준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와 디스플레이서치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세계 1위 제품은 20개에 달한다. CTV와 모니터, 휴대폰, D램, 낸드플래시, 모바일AP, 냉장고부터 삼성SDI의 리튬이온 2차전지, 삼성전기의 반도체용 기판 등 20개 제품의 점유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아졌다.
삼성 외에도 사실상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각 산업 분야에서 ‘1등 제품’을 쏟아내며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창조경영을 위해 ‘세계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시장 선도상품’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LG는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이끌었다. LG전자는 2002년을 기점으로 국내 드럼세탁기 대중화와 함께 해외 시장 공략을 본격화해 연평균 30% 이상 급신장했다. 특히 국내 업계 최초로 드럼세탁기를 출시한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드럼세탁기 글로벌 판매량이 1000만대를 돌파했다.
또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이미 20여년 만에 세계 시장을 평정했다. 지난해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 외에도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의 점유율은 이미 70%를 육박했다. 국내 기업의 세계 시스템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0년 전만 해도 2~3% 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무려 5.4% 점유율로 대만을 제치고 세계 4위 국가가 됐다.
결국 ‘미래의 1등 사업만이 기업을 살릴 수 있다’는 명제는 진리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