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등 요구, 사측 “수용 불가”… 금융권 총파업 12년만에 재연 조짐
올해 금융권 노사협상 테이블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임금 협상을 둘러싸고 은행권 노사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교섭 대표단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상견례를 갖고 첫 교섭에 나섰다. 사측 협상위원은 김종준 하나은행장과 홍기택 KDB산업은행장, 리처드 힐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장, 성세환 부산은행장, 김종화 금융결제원장 등 5명, 협상대표로는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이 참여했다.
노조측에서는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과 김창근(하나은행)·강태욱(KDB산업은행)·서성학(SC은행)·김현준(부산은행)·정윤성(금융결제원) 등 5인의 노조위원장이 참석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는 후문이다.
올해 임금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부분은 바로 임금 인상률에 대한 양측의 입장차다. 노조측은 정규직 기준 8.1%의 인상률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상급단체인 한국노총의 임단협 지침에 따른 것. 하지만 사측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업계의 현실을 무시한 말도 안되는 요구라는 것이다.
정년 연장안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 노조측은 중앙노사위원회에 60세 정년을 보장하고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을 60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시기인 65세로까지 늘려 달라는 안건을 올렸다. 정년연장안이 국회를 통과한 만큼 올해 안건에 올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측은 임금협상만 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는 임금협상만 진행하는 해로 정년 연장안은 올해 단체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다. 아울러 노조측이 요구하는 근로시간 정상화를 위한 PC자동오프제나 사회공헌 이행 현황 점검에 대해서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처럼 시작부터 노사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지난해처럼 총파업 결의가 발생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금융노조는 사측과의 교섭이 결렬되자 12년 만의 총파업을 결의했지만 우리금융 매각 중단으로 총파업을 철회하고 협상을 벌인 바 있다.
일단 첫 대면에서 양측이 팽팽한 입장차를 확인한 만큼 향후 대응 수위는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일단 사측은 노조 요구를 검토한 뒤 추후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여론의 향배도 이번 금융권 임단협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의 수익 악화가 뻔한데다 사회적 책무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임금 8.1% 인상이라는 요구는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얻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 은행권은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연봉을 꾸준히 올려 KB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기업 등 6개 시중은행의 2009~2012년 3년간 연봉은 3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1인당 평균 자산액이 10.7% 증가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2배 넘게 연봉이 뛴 셈이다.
더구나 고액연봉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융권의 현실을 감안할 때 더더욱 현실을 망각한 요구라는 지적이다. 재벌닷컴이 2012회계연도 사업보고서 기준 투자목적 법인을 제외한 12월 결산 상장사 및 비상장 시중은행 등 1710개사의 업종별 직원(임원 제외) 임금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은행업의 평균 연봉은 7466만원으로 자동차와 정유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번 임단협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변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은행의 체질 개선과 경영합리화 같은 자구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은행 스스로 수익성 악화를 해소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임단협에 임하는 노사 양측의 각오가 결연하기 때문에 파행을 거듭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조는 물가인상률과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해서 8.1% 임금인상을 도출한 만큼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고, 사측도 수익악화 등을 감안할 때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