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연된 성희롱-4] '갑을관계의 결정판' 직장 내 성희롱…“권력관계 얽혀 감히 맞서기 두려워요”

입력 2013-05-15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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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모 조교(당시 24세)는 1992년 5월29일 서울대 화학과 기기담당 조교로 임용됐다. 관리 교수였던 신정휴 교수(당시 51세)는 복도 등에서 우 조교를 마주칠 때면 등에 손을 대거나 잡았고, 실험실에서는 머리를 만졌다. 정식 임용된 뒤에는 단둘이 입방식을 하자고 제의하기도 했고 교수연구실로 자주 불러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몸매를 감상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우 조교는 신 교수에게 이에 대한 불쾌감과 거부 의사를 밝히자 그가 자신을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고 주장하며 신 교수와 서울대학교, 정부를 고소했다. 당시 우 조교의 변호는 박원순 서울시장,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맡았다.

1998년 대법원은 우 조교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며 “원고 우 조교가 불쾌하고 곤혹스러운 느낌을 가졌다는 것을 보면 사실상 원고에 대해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피고 신 교수의 언동은 분명한 성적인 동기와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서울대 우조교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의 성희롱 민사소송이 됐다. 이 판결은 최초로 성희롱을 불법행위로 인정한 것이기도 하며, 성희롱 개념이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남녀차별금지법과 남녀고용평등법 등에 의해 도입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판결 후 1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에 접수된 고용평등 상담 통계 중 44.8%가 성폭력 관련 상담이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의뢰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2011년 여성노동자 1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노동자의 직장 내 성희롱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9.4%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크루트가 남녀 직장인 5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 47.5%(261명)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고, 사람인이 여성 직장인 1036명에게 실시한 조사 역시 33.6%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직장 내 성희롱을 없애기 위해 기업들은 여성발전기본법 제27조에 따라 매년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며 자체 예방지침 등을 마련해 두고 있다.

만일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사내 고충처리위원이 사건을 조사하며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지방고용노동청이나 국가인권위원회에 피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성희롱 사건으로 삼성전기를 그만두고 ‘삼성을 살다’라는 책을 펴낸 이은의 씨, 역시 성희롱 사건에 문제를 제기한 후 해고당했던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등 피해자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희롱에는 권력이 개입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찬식 인권위원회 조사관은 “성희롱은 피해자 개인에게는 폭력이고, 사회적으로는 적대적 고용환경을 만들어 사회적 손실을 낳는 만큼 각급 기관·기업·개인들이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성희롱 부당해고 피해 노동자 지원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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