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율인상” “증세없다” 여야 논란… 급물살 타던 토빈세법 제자리
세법을 심사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최근 산하에 새 소위원회를 꾸렸다. 조세·세정분야의 개혁작업을 총괄하게 될 ‘조세개혁소위원회’가 그것이다. 특위 형식의 조세개혁소위 발족 배경엔 새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복지확대’ 실현이 자리한다. 세율 인상, 비과세 감면, 소득세제 개편 등 조세개혁을 통해 국회가 대선 공약 및 복지 재원 마련에 힘을 모으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달 24일 구성된 조세개혁소위는 위원장(조정식 의원)과 간사(안종범·홍종학 의원)만 선임됐을 뿐 세입 확충을 위한 세법 관련 논의는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를 둘러싸고 여야 간 이견 폭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세율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정부와 새누리당은 “증세는 없다”며 세출절감 노력과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한 재원 마련을 강조하고 있다.
기재위 하편에서는 장기펀드 소득공제 도입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증권거래세법 개정안’, ‘한국형 토빈세 도입’을 위한 ‘외환거래세법 개정안’ 등 증세 논란에 막혀 표류 중인 세제 관련 법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당초 장기 세제 혜택 펀드는 지난해 말 정부 세제개편안에 포함돼 도입이 추진됐다. 하지만 재형저축펀드 중복, 세수 부족, 원금 손실 투자상품에 대한 세제 혜택 논란 등으로 국회 논의가 무산된 바 있다.
4월 국회에서도 이 법안은 세수감소에 대한 우려에 부딪혀 전혀 논의되지 못한 채 6월 국회로 넘어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장기 세제 혜택 펀드 도입을 재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법안 통과 가능성까지 제기됐지만 작은 기대조차 무색해지게 됐다.
국회가 토빈세와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에 소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가파르게 치솟고 있는 원화가치에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법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이 위기상황 시 외환거래에 최대 30% 고율의 거래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은 ‘외환거래세법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한국형 토빈세 도입’ 기반은 마련됐다. 그러나 여야 간 입장차가 분명해 현재 기재위 내 조세소위원회에서 논의가 거의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나성린 새누리당 조세소위원장은 “우리나라만 독자적으로 도입하면 외국인 자금 유출 등 정책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며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좀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반대 입장을 취했다. 반면 야당에서는 세계적 환율전쟁에 대한 방안과 재정건전성 확보 측면에서 찬성하는 분위기다. 법안을 발의한 민 의원은 “국회 예산정책처에 세수 추계를 의뢰한 결과 한국형 토빈세가 도입될 경우 8029억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생상품에 거래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골자로 한 ‘증권거래세법 법률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현재 다른 금융상품과의 과세형평을 위해 발의된 이 법안 역시 부산지역 일부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여야는 지난해 4월 총선 때만 해도 법 개정에 적극적인 모습이었지만 부산지역 이익단체들이 거래세가 도입되면 파생상품 시장이 위축돼 파생금융상품 중심지인 부산의 입지도 흔들릴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렇게 기약 없이 처리가 미뤄진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증세 논란과 정치권의 표심에 밀려 논의의 첫발도 떼지 못한 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기재위 조세소위 소속 관계자는 “파생상품에 대한 과세는 결국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라며 “지역구 출신 일부 의원들과 금융계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의견들이 얽혀 있는 상태라 장기적으로도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야당 의원들이 적극 발의한 소득세, 법인세 인상 등 부자 증세 관련 법률개정안도 증세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표적 법안들이다.
◇경제활성화 주도할 민생법안도 국회서 ‘쿨쿨’ = 오는 7일까지로 연장된 4월 임시국회 회기가 일주일여밖에 안 남았지만 현재 기재위에서 경제부흥을 뒷받침할 민생 법안들은 무기한 표류 중이다. 정부가 지난 이명박 정부 때부터 서민 생활 안정과 내수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경제관련 법안 심사는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 여야 간 대립 쟁점 때문에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낙후된 서비스산업의 경쟁력을 체계적으로 강화하고자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발의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제조업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만들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됐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18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지난해 7월 재상정된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돼 소관 소위인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 손도 못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140개 국정과제 가운데 ‘서비스산업 전략적 육성 기반 구축’이 포함되면서 기획재정부는 올해 상반기 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여전히 처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야당은 서비스발전법을 통해 정부가 의료기관의 민영화를 꾀하려 한다며 계속해서 법안 처리를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