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철학’ 필요한 다문화 정책- 박엘리 사회생활부 기자

입력 2013-03-2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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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거리에는 다문화 음식 문화를 상징하는 조형물인 ‘담음’이 있다. 2010년 1월에 세워진 이 조형물은 각 국의 다양한 문화를 담은 그룻과 젓가락을 상징하며 세계가 하나가 됨을 뜻한다.

경기도가 1억5000만원을 투입해 만든 이 대형 조형물은 3년이 지난 지금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조형물 바로 옆에 한 치의 공간 여유도 없이 설치된 ‘다문화 특구 경찰센터’ 컨테이너 박스는 다문화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두 가지 시선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국경 없는 마을에 있는 다문화 거리에 가보기 전까지는 외국인 범죄가 판치는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상상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평범한 주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저출산과 고령화의 대안으로 다문화주의를 수용했다.

정부 주도의 다문화 정책들은 모두 경쟁력 강화와 주류 사회 편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는 다문화 가족에게 우리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지만 그들은 이미 2~3개의 문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단순한 인력 보충의 도구가 아닌, 다문화적인 요소를 지닌 새 무형자산으로 여긴다면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

우리가 다문화 가족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차별한다면 지나친 경쟁 위주 사회에서 그들은 경쟁력 없는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고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다.

다문화거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인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도 나눈다는 의미다. 이 국경없는 마을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길이 보였다.

승진을 위한, 예산 따오기 식 누더기 다문화 사업들 말고 정부가 다문화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본다. 화려한 포장지가 아닌 내용이 알찬 정책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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