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인사전횡·업무개입 차단…"험한 모습 보이겠다"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는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권한이 줄어들고 책임은 강화된다.
정부는 자회사에 대한 부당한 인사 개입, 증거를 남기지 않고 이뤄지는 업무지시 등을 차단하는 방안에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혁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25일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 인사를 좌우하고 일일이 업무지시까지 하는 행태를 뜯어고치는 게 이번 지배구조 개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선 금융권 '4대 천왕'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겠다"며 "여기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일 수 있다면 경우에 따라선 '험한 모습'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금융권 4대 천왕이란 지난 정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앞세워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일컫는다.
금융위는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모든 지시는 문서로 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주사 차원의 업무 지시에는 반드시 자회사의 의견을 듣고, 금융지주 회장이 자회사 이사로서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일도 차단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지주사와 자회사의 관계가 모호하고 회장이 지나친 권한을 휘두르는 문제가 있다"며 "금융위가 조만간 지침을 마련해 함께 작업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금융지주사와 은행을 검사하면 사실상 지주사 회장의 지시로 추진된 업무인데도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은 탓에 지주사 회장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23일 취임식에서 "정말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 땅에 올바른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우리의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신 위원장의 발언은 선진국의 금융지주사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국제금융 전문가로서 국내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시각에서 비롯했지만, 실제로는 이팔성·강만수·어윤대 회장에 던지는 '퇴임 권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강 회장과 이 회장은 이달 중 자신의 거취를 두고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안다"며 "어 회장도 교체 대상이지만 임기가 오는 7월 끝나는 만큼 회장추천 절차에서 배제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인사는 한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으나, 기관장이 "국정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과 신 위원장의 취임식 발언이 이어지자 뜻을 접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금융권에선 금융위의 압박이 오히려 '관치'를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차기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금융위가 개입할 여지가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원 중 관료 출신이 적지 않아 당국의 입김이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며 "이들이 새 경영진 물색이나 차기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지배구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