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퀸 꿈나무 키운다" 미래로 롱퍼팅… "이상적 지도자의 길 준비" 리더십 클린슛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화려했던 현역 생활을 접고 제 2의 인생을 설계하는 두 명의 스포츠 스타들이 있다. 현역에서의 1막을 뒤로하고 은퇴 이후 펼쳐질 인생의 제 2막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향해 달려가는 2명의 스포츠 스타를 만나본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경험을 살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키워내고 싶다”
157cm 키 때문에 ‘슈퍼 땅콩’으로 불리며 국내 골프 1세대를 책임졌던 김미현(35)이 지도자로서의 인생 2막을 시작한다. 그는 주니어와 프로 선수들을 대상으로 ‘김미현 골프아카데미’를 열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 양성에 힘을 쏟는다.
국내 투어와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에서 각각 11승과 8승을 올린 김미현은 선두에서 여자골프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맨 뒤에서 선수들 조력에 나선다.
인천 남동구에서 부친이 운영하는 골프연습장 ‘김미현 골프월드’에서 만난 김미현은 지도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17년차 프로골퍼지만 신인 같은 패기가 넘쳤다. 인터뷰 진행 중에도 동계훈련을 위한 준비 때문에 분주했다.
김미현은 “어느 순간부터 경쟁자로 보여야 할 후배들이 마냥 이쁘게 보이기 시작했다. 후배들이 필드에서 조언을 구하면 성의껏 알려주곤 했는데 가르치는 것에 대한 흥미와 재능을 봤던 것 같다”고 했다.
망가진 무릎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미국투어를 이어나갔다. 결국 그는 수술대에 누웠고 재활을 진행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마음 놓고 쉬어본 적이 없었고 오로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전했다. “쉬는 것도 힘들더라. 문득 지금까지 이뤄 온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고 고민 끝에 내가 경험한 것을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라고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 여러 아카데미가 있지만 기술적인 레슨만으로는 훌륭한 선수로 키울 수 없다. 내 경우에는 필드에서 느끼는 심리적인 부분부터 코스를 공략하는 전략까지 전체적으로 가르칠 자신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미현은 ‘책임감’을 짊어져야 한다는 게 선수와 지도자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에게만 집중했던 선수 때와 달리 학생뿐 아니라 부모님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감이 생겼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자녀를 최고의 선수로 키우기 위해 저를 믿고 맡겨 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릴 수 없다. 그래서 확실한 지도법을 짜기 시작했다. 골프는 목표가 분명한 스포츠다. 그린을 보고 샷을 하는 것과 핀을 보고 샷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선수들에게 정학한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옆집 언니 같은 김미현이지만 수업이 시작되면 눈 빛이 달라진다. 아카데미를 찾는 선수들은 그야말로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는다. 학생의 편의에 맞추지 않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철저한 관리를 진행한다.
“개인의 스타일에 맞는 효율적인 지도법이 필요하다. 선수마다 각기 다른 운동법이 있다. 옳은 길을 얼마나 빨리 인도해 주느냐는 내 몫이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성공하는 것이 주니어 선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누구보다 잘 도와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현은 지난 해 12월 26일부터 오는 1월 24일까지의 일정으로 태국 동계훈련을 통해 주니어 선수들과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내 손으로 키워낸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우승을 이루는 상상을 한다. 내가 이뤄낸 우승보다 훨씬 값지고 짜릿할 것 ㅤ같아 벌써부터 벅차 오른다”
김미현에서 골프를 빼고 인생을 논할 수 있을까.
세계 최고의 핸드볼 리그 중 하나로 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년간 활약하며 8번의 득점왕을 차지했고 분데스리가 역대 최다골을 기록 중이며 2001년 국제핸드볼연맹 선정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화려한 스타가 윤경신(39)이다.
윤경신은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1996년 독일 VfL 굼머스바흐로 이적했다. ’95년 아이슬랜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유럽 내 많은 클럽들이 그의 영입을 시도했다. “많은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어릴 때부터 독일 무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굼머스바흐는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쾰른 체육대학교 인근에 있는 도시였고 선수 생활 이후 그 곳에서 학업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 택하게 됐다”라고 윤경신은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윤경신은 2008년 국내로 복귀하기 이전 쾰른 체육대학교에서 학업을 시작했지만 개인사정으로 3개월만에 학업을 접었다. 석사와 박사과정은 모두 모교인 경희대에서 이수했고 최근 박사논문 심사가 끝났다. “준비된 지도자, 실기 뿐만 아니라 이론을 두루 겸비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학업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교수가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수 자리 하나를 바라보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되고 싶다고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미래를 어느 한 가지로 한정짓고 싶진 않다. 지도자가 될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 달려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연구한 분야는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그는 “유럽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얻은 경험을 국내 상황과 접목해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제시하고자 했다”라고 덧붙였다.
현역 생활에 대한 아쉬움도 없진 않다. “큰 부상 없이 40세까지 뛴 만큼 후회는 없다. 하지만 5번의 올림픽에서 끝내 메달을 따지 못한 것은 아쉽다.” 실제로 윤경신은 몸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2012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윤경신은 화려했던 현역을 떠나 이선으로 물러났다. 5년 전 함부르크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은퇴하면 그동안 헌신한 아내를 내조할 것”이라고 말했던 그다. 그 마음은 변치 않았을까. “막상 은퇴를 하니 할 일들이 자꾸 생겨 여전히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있다”라며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 동갑내기 아내 권순균씨는 의상 디자이너지만 결혼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 일을 접었다. 귀국 후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잠시 쉬고 있다. “남편으로서는 점수를 줄 수도 없을 정도다. 그나마 요즘은 쉴 틈이 생겨 열심히 집안 일을 해주고 있다”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윤경신은 핸드볼계의 발전을 위해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어느 나라에서든 뜻이 다른 집단은 있다. 하지만 핸드볼 발전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위해서는 소속과 파벌에 관계 없이 무조건 힘을 합친다. 언제까지 비인기 종목이라고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발전을 위해서는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 윤경신은 뜻 깊은 자선행사를 소개했다. 1950년 보스턴마라톤 우승자 함기용옹의 손자인 함영훈 미술작가가 주도해 각계 스포츠스타들을 주제로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수익금은 소화암환자 돕기에 기부하는 행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아산병원의 후원으로 1월 3일부터 2월 1일까지 아산병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와 불우한 이웃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다. 이제는 좋은 취지의 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