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그룹이 위기라고? 천만의 말씀

입력 2012-12-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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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요계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언론기사들이 자주 눈에 보이고 있다. 가요 순위 차트에서도 아이돌 그룹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으며 아이돌보다는 긱스, 에일리, 노을, 케이윌같은 개성파 가수들이 훨훨 날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서른 팀이 넘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경우가 거의 없다는 분석이며 “아이돌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기도 하고 ‘춤보단 가창력…’ 이라는 제목으로 아이돌그룹이 위기라고도 언급한다.

현재 한국대중가요시장의 표면적인 흐름을 보면 이러한 의견이 100% 틀렸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각으로 보기보다는 K Pop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특히 2012년 들어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들을 주죽으로한 소위 비아이돌계 음악 (버스커 버스커, 이하이, 나얼 등)과 기존 아이돌그룹의 지속적인 선전(지드래곤, 씨스타, 시크릿 등) 그리고 금년에만 무려 35여 개 팀에 육박하는 신인 아이돌그룹들의 데뷔(A.O.A, 헬로우 비너스, EXID, Tasty 등)의 양자대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의 과학사학자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이 그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1962)’에서 과학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하여 언급한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용어를 적용해 ‘K Pop의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류를 주도하면서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신한류’로 대표되던 K Pop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히트이후 K Pop=아이돌음악 이라는 공식이 자연스럽게 깨지면서 K Pop의 절대 우세종이었던 아이돌음악을 비아이돌계 음악이 대체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대중문화현상의 흐름이라는 얘기이다.

패러다임이란 모델 혹은 패턴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신한류로서의 K Pop이 전형적인 모델이었던 아이돌그룹의 음악에서 그 패턴이 그 밖의 음악으로의 전환 즉, K Pop의 패러다임 시프트 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맞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금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고, ‘수퍼스타 K’, ‘위대한 탄생’, ‘K Pop스타’등과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인기로 인해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의 음원이 정식 가수로 데뷔도 하기 전에 대중가요차트의 상위권에 오르는 기현상(?)이 최근 몇 년간 한국대중음악시장에 나타났을때 부터 이러한 조짐은 예견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큰 흐름, 누군가 거대한 비전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그 트렌드를 쫒아가는 현상으로, 물줄기가 바뀌는 지점을 가리켜 이것을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부른다. 이런 지점에서는 그것을 파악하고 새로운 물결의 중심에 서는 사람은 리더가 되고, 과거의 물줄기를 타고 사라져가는 사람은 낙오자가 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K Pop은 지금 그 주류의 줄기가 바뀌어 가는 과정에 서 있으며, 그 패턴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전환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상품화되어 버렸고 인간사회의 전통적인 기능이 박탈되었다”고 파악하면서 이런 전환을 통해 의식되어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사회적인 완결성을 유지하면서 생산과 분배가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는데, 이에 빗대어 ‘시장 패턴의 변화’가 바로 지금 한국대중음악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다.

시크릿(Secret)이라는 아이돌 걸그룹이 2011년 1월 ‘샤이보이’(Shy Boy)라는 곡을 발표하였을 때, 필자는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기존 아이돌그룹들의 댄스 성향도 아니었고, 시크릿의 이전 히트곡과도 아주 다른 복고풍의 노래를 발표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정신은 기업경영에 있어 ‘혁신’(Innovation)으로 높이 평가는 하나, 상업성으로의 연결은 매우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곡은 KBS2 ‘뮤직뱅크’라는 순위 프로그램에서 당당히 1위를 하였으며, 그 후 6월에 발표한 더욱 복고스러운, 어찌 보면 아이돌 걸그룹 스타일의 노래가 아닌 ‘별빛 달빛’이라는 노래도 1위를 기록하였다.

이때부터 필자는 댄스음악중심의 아이돌 씬에서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지켜보았으며, 이후 ‘티아라’라는 또 다른 아이돌 걸그룹이 2011년 7월 “롤리 폴리”라는, 기존 아이돌그룹의 전형적인 음악장르였던 ‘일렉트로닉댄스’풍이 아닌 70년대 말 전 세계를 휩쓸었던 ‘디스코’라는 장르로 무장하여 가요차트 정상을 차지하였을 때 이미 ‘아이돌 씬’내부에서도 ‘패러다임 시프트’를 예상 하였었다.

이러한 현상은 필자가 누누이 언급한 한국대중가요의 다양성의 청신호였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아이돌음악이 K Pop을 주도한 이후 줄곧 비판의 요소였던 즉 아이돌음악이 한국대중가요를 한쪽으로 쏠리게 한다는 소위 ‘쏠림현상’을 자연스럽게 무마시키는 흐름인것이다. 1960~1970년대 이후 프랑스뿐만 아니라 서구 마르크스주의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론가 중 한명으로 불리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피에르 알튀쎄르(Louis Pierre Althusser)의 업적중 그가 (데리다식 해체를 함께 외치는 것처럼) 다양성을 주장했다는 점이 아니라, 그가 동시에 다양성을 같이 고려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사실인데, 즉 다양성 자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폐단에 빠지지 않고, 복합적 통일성속의 다양성을 생각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 증요한 지적이다. 이미 한국의 아이돌 씬에서는 2010년 10월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신한류”라는 리포트를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이후, 불과 3개월 후인 2011년 1월 시크릿이 “샤이보이”라는 곡으로 아이돌음악의 다양성의 신호를 보여주었던 것이며, 2012년 12월 현재 언론들은 “아이돌의 위기”라는 표현으로 적어도 더 이상 “아이돌음악으로 인해 한국대중가요가 동질화되고 있다”라는 명제에 스스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덧붙여, ‘춤보다는 가창력, 아이돌 위기’라는 표현으로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그룹을 폄하하는 뉘앙스를 주는 일부 언론들에게는 어느 그룹이 그것에 해당이 되는지 밝히라고 주장한다. 금년 상반기에 데뷔한 걸그룹 She's는 네 명의 멤버 전원이 “실용음악과”의 보컬전공으로 네명 모두가 메인 보컬이라는 콘셉트로 데뷔를 하였고, 유니버설 재팬 사장의 한국 아이돌에 대한 평가가 ‘가창력이 뛰어나다’라고 언급한 인터뷰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임대차 시장의 힘의 비대칭성 해소'정책이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패러다임 시프트’에 해당한다는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현재 한국의 대표 문화상품인 K Pop의 패러다임 시프트도 대선정책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금 아이돌 그룹은 위기가 아니라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이돌그룹의 진화는 곧 K Pop의 진화이며, ‘싸이 혁명“이후 그 불길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사막을 초원으로 바꾼 이집트의 ‘세켐’((Sekem)운동, 대체에너지 혁명을 이루어낸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킨세일’(Kinsale), 그리고 금융위기와 실업위기 극복의 희망을 보여준 독일의 지역화폐 ‘킴가우어’(Chiemgauer)에 이르기까지 정부가 해내지 못한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일군 개척자들의 model들의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거시담론으로부터 K Pop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동아방송예술대학 엔터테인먼트 경영과 겸임교수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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