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10년]‘인생역전 바란다고요? 고통 없는 세금 내고 계시는군요’

입력 2012-11-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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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과 같은 사행행위 중독 위험… 서민 덤터기

▲로또복권이 국내 상륙 10년 만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서민들의 대표적인 도박으로 자리잡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도박 이용실태 조사에서 국민 60.1%가 로또복권을 가장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사진은 로또 명당으로 소문난 서울의 한 복권방 모습. (사진=방인권 기자 bink7119@)
‘인생 역전’은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환상일까. 국내에 로또 복권이 도입된 지 10년 됐다. 국가가 나서 사행심을 조장한다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로또 열풍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있다. 특히 경제난이 장기화하면서 서민들 사이에서는 ‘인생역전’이라는 허황된 꿈을 좇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실직한 40~50대 가장이나 청년 실업자들에게서 로또 복권 중독에 의한 각종 폐단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서민의 답답한 심정을 이용해 사행심을 부추기면서 얇아진 서민 주머니를 대상으로 ‘고통 없는 세금’을 거둬들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니버트는 복권의 역사를 “서민의 꿈에 세금을 매긴 인간 수탈의 역사”이자 “일확천금을 좇아 자신의 꿈을 저당 잡힌 인간 탐욕의 역사”라고 비판했다.

◇ 허황된 꿈이 빚어낸 부작용

“일상에서 숫자만 보이면 조합하는 버릇이 생긴 지 오랩니다. 그래서 늘 볼펜과 메모지를 갖고 다니죠. ‘이번에는 될거야’라는 희망 섞인 자기 위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9년 가까이 매주 로또 복권을 구입하고 있는 김광수(55·가명)씨. 김씨는 7년 전 이혼한 뒤부터 건설현장을 누비며 일용직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사무용품 회사 영업직 간부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던 김씨가 로또 복권에 큰돈을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로또 광풍이 분 2003년 4월 제19회차 때부터다.

당시 3주 연속 1등이 나오지 않아 1등 누적상금이 400억원을 웃돌았다. 이때부터 김씨가 로또에 인생을 걸기 시작했다.

김씨는 “저만 그런 게 아니었을 겁니다. 혹시 그 돈의 주인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 말이죠. 처음으로 로또 복권을 5만원어치 샀는데, 이것이 가정파탄으로까지 이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라고 후회했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이명희(35·여·가명)씨는 전국을 돌며 로또 명당을 찾아다닌 지 6년째다. 이씨가 내민 다이어리에는 내년 3월까지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소문난 명당 판매소에서 로또를 얼마치 구입할지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는 이씨의 사연은 이렇다. 로또 복권방에 들른 지 6개월 정도가 되던 날 복권 8000원어치를 샀는데, 2000원이 없어 사지 못한 숫자조합 2개 중 1개가 덜컹 1등과 같은 숫자였던 것.

이씨는 “마지막 숫자 1개만 달리 복권을 구입했는데 하필이면 1등 숫자를 빼놓고 산 것입니다. 다른 복권이 3등에 당첨돼 100만원 남짓 받았지만 지금도 40억원이 눈앞에서 떠나질 않아요”라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부 사람들은 저마다 충격의 정도는 다르지만 로또 중독에 따른 각종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꿈속에서 로또에 시달리거나, 심한 두통과 불면증, 우울증, 불안증 등을 겪는다.

A신경정신과 전문의는 “복권도 도박과 같은 일종의 사행 행위이므로 중독성에 의한 피해 사례가 많다”며 “로또 구입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줬거나 또는 여러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중독이 의심되며 정신재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 정부가 국민 상대로 사행심 조장 지적

정부가 직접 나서 도입한 로또 복권이 ‘대박’ ‘인생역전’이란 유행어를 만들면서 사람들에게 1등 당첨에 대한 허황된 꿈을 갖도록 만들었다.

로또복권은 대표적인 불황 상품으로 사행산업이다. 사행산업은 경기 침체기에 호황을 누리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성장률이 0.3%를 기록하며 극심한 침체를 겪었던 2009년 국내 사행산업은 3.3%가 넘는 성장률을 보였다. 로또 복권 판매 역시 광풍이 분 2003년 이후 하락세를 보이다 2009년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문제는 로또 도박에 인생을 거는 서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 1인당 로또복권 구입액이 6만1526원으로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2010년에는 6만2635원, 지난해에는 7만1659원으로 커졌다. 올해 역시 7만원을 웃돌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한국마사회(KRA)가 실시한 ‘전국민 대상 도박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도박을 즐기고 있으며 100명 중 1명은 ‘도박 중독자’였다. 특히 일확천금을 노리는 대표적인 도박은 로또 복권으로, 응답자의 60.1%를 기록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도박으로 나타났다.

◇ 로또의 다른 이름 ‘고통 없는 세금’

복권은 부를 무작위로 분배하기 위한 좋은 도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라를 불문하고 복권을 많이 구입하는 대상은 주로 서민층이다.

미국의 도박 영향에 관한 연구위원회에 따르면 고졸 이하 학력자는 대졸자보다 4배 많이, 흑인들은 백인보다 5배 더 많이 복권을 산다고 한다. 그래서 ‘빈자(貧者)의 세금’이라고 불린다.

로또 복권 판매 수익으로 조성된 기금은 △저소득 취약계층 △서민주거안정 △문화예술진흥 △국가유공자 △재해재난 등 5대 공익사업에 지원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로또 복권 등은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메우려는 꼼수로써,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도 불린다.

그렇다 보니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서민을 돕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서민에게 덤터기 씌운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빈민운동가 알베르 자카르도 “복권 놀이는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겉치레이며, 있지도 않은 희망에 매기는 세금”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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