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유섭의 좌충우돌]‘기재정정’ 공시 남발

증권시장에는 공정한 거래와 가격이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시제도가 있다. 공시제도는 기업이 주주, 채권자,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권리행사와 투자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알리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또 공시는 시장에서 이해관계자들이 가장 편리하게 보고 믿을 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공시에 대한 기업들의 부족한 인식을 읽을 수 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1주일간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공시는 1264건이다. 이 중 공시 제목에 ‘기재정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온 공시는 무려 222 건에 이른다. 10 건 중 2 건은 오류가 있었던 공시라는 셈이 나온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이를 ‘단순한 기재오류’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이 이해관계자들에게 성의가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기재오류로 다시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되는 공시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보가 누락된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명확해야 하는 수치에 오류가 생긴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일부 기업들은 자신들의 공시에 ‘기재정정’ 꼬리표를 상습적으로 달고 있다. 단순한 기재오류로 판단할 간단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국내 공시는 규격화된 양식을 갖고 있다. 규격에 맞게 딱 그 내용만 넣어서 공시하면 된다. 그러나 규격화된 공시 양식에도 불구하고 기재정정이 많다는 것은 기업들이 공시를 가볍게 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더욱이 공시를 통해 경영진의 개인정보와 법인의 인감이 노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사실이 다른 말로 포장돼 공시되기도 한다. 코스닥 A사는 위법한 감사위원을 선임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해당 위원이 사퇴했다는 공시를 냈다. 공시내용에는 사퇴이유가 ‘일신상의 이유’다. 불법행위가 간단한 꼼수로 쉽게 포장되어 버린 것이다.

금감원과 한국거래소는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단순한 문제로만 여기고 있다. 적어도 문제를 줄이는 방법이라도 생각해야 한다. 상습적으로 오류를 내는 기업에는 당연히 불이익을 줘야 한다. 상습적으로 벌이는 잘못이 단순 실수로 변질되지 않도록 공시제도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도 내용 누락과 수치오류 등의 문제로 기재정정 공시가 나오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공시는 시장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정보다. 기업이 그 내용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기업이 공시내용을 가볍게 생각한다면 스스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 셈이다. 주주와 채권자, 투자자들은 공시정보가 필요한 이들이다. 또 이들은 기업을 존재케 해주는 주인공이다. 기업 경영진은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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