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지향점 전문가 제언
최근 강도 높게 거론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다. 기업 규제와 경제력 집중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는 반기업 정서를 더욱 가열시켜 기업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위축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성장의 중심에는 항상 기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경제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업 투자가 이뤄질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선행돼야 하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기업 성장에 대한 관심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기업활동과 자유 존중 △시장논리에 따른 평가와 감시 △기업의 투자 및 고용확대 책임 강화 △사회의 공정한 평가 등을 제시했다. 활발한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정책보다는 지금은 대기업의 기를 살리는 처방의 묘수가 필요한 때라는 주장이다.
기업 환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발견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1300개가 넘는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지만 매출, 고용인원 등 관련법에서 정하는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사라진다. 게다가 각종 규제마저 더 늘어난다. 이 때문에 정책이 만든 온실 속 중소기업은 더 이상 성장을 원치 않는 결과마저 초래하고 있다.
그렇다고 대기업을 중소기업처럼 똑같이 대우해 달라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동기 부여 측면에서 규제만이라도 최소화시켜야 한다. 기업의 성장 사이클이 정략적인 외적 환경에 의해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우려된다. 경제민주화가 헌법적 가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시장 경쟁을 통한 결과의 불평등을 정부가 개입해서 어느 정도 완화하자는 의미가 있다.
헌법 119조 2항에 나오듯이 경제민주화는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해석과 방법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마치 대기업 때리기나 재벌 해체만이 답인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자체는 존중받아야 할 가치이지만 편 가르기나 마녀사냥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회 통합적 차원에서도 도움이 안된다.
기업의 성장지원 측면에서도 경제민주화는 잘못된 방향을 잡고 있다. 지금의 논의는 분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눌 대상, 즉 성과물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균형 잡힌 숙의는 없다. 마치 제로섬 게임을 하듯이 대기업이 갖고 있는 과실을 중소기업에게 그대로 나누길 바라는 논리다.
그 보다는 나눌 파이(과실)를 더 키울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이 힘을 모으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대기업의 추가적인 성과를 유도하는 지원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
대기업을 향한 지나친 규제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순환출자 제한이나 금산분리 강화 방안은 대기업들이 설비 및 연구개발(R&D), 일자리 창출에 투자할 자금을 경영권 방어에 쓰게 돼 정책 입안자들이 의도한 것과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일자리 측면에서도 대기업이 투자를 늘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대기업의 투자는 위축시키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어긋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자금지원, 세(稅) 인하, 보호무역 조치 등 자국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우리나라에서만 ‘경제민주화’에 꼭 필요하다며, 기업규제 강화에 몰두하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정치권이 이루려는 ‘양극화 해소’의 방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대기업의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가 ‘나쁘다’는 인식을 조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에서 경제 회복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성장의 중심에는 항상 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60~70년대 가발로 시작해 오늘날 자동차, 스마트폰 등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세계 수출 7대국으로 도약한 것은 위험을 무릅쓴 우리 기업들의 도전 없이는 불가능했을 일이다. 수차례의 경제위기를 버텨내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다양한 산업의 발전과 일자리 창출, 나아가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도 가능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과열되고 있는 반기업 정서는 대기업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어떤 영역이든 대기업이 나서면 상권침해, 불공정 행위라는 비난이 앞서니, 기업들은 마음 놓고 공격적 투자를 계획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 경제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인데, 그 일자리를 만들 기업들이 반기업 정서에 떠밀려 해외로 옮겨가지는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이제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 정부는 기업의 잠재력이 더 많이 발휘될 수 있도록 기업 활동의 자유를 존중하고, 평가와 감시는 시장에 맡겨두자. 기업은 경제 회복을 위해 투자와 고용 확대라는 책임을 다하고, 사회는 이를 공정하게 평가하자. 정치권이 혹시라도 표를 얻기 위해 대기업 규제에 힘을 허비하고 있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타격을 고려해 이쯤에서 그쳐 달라. 국민의 삶이 걸린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정치가 아닌 온전한 경제논리로 다뤄지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를 살려주면, 경제는 절로 살아난다.
대기업 총수가 횡령·배임죄를 저지르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새누리당에 의해 대표 발의됐다. 동(同)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관련 첫 법안이다. 하지만 경제범죄 가중처벌이 헌법 제119조 2항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명분에 함몰된 쾌도난마’에는 늘 복병이 숨어 있다.
배임은 횡령과 달리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경영 판단의 결과로 손해를 입힌 경우와 배임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삼성의 창업자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안 좋았다면 배임이 될 수도 있다.
경제민주화는 인위적인 분배질서를 전제로 한다. 강자의 것을 덜어내 약자에게 옮겨주기 때문이다. 골목상권 보호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규제하겠다지만 SSM과 연계된 사회적 약자도 다수 존재한다. 국가는 서로 대립되는 경제주체 간의 이해를 조정할 만한 ‘경제계산 능력’이 없다. 국가가 ‘경제민주화’ 이름으로 ‘특정 계층’의 편의를 도모하면, 이는 또 다른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경제민주화는 ‘국가개입주의에 지대추구행위’가 더해진 최악의 조합이 될 수 있다.
경제민주화의 기저에는 ‘그동안 경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압도해 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경제권력이 존재한다면, 이는 소비자와 투자자가 부여한 권력이다. 따라서 경제권력과 경쟁력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대기업의 불법 행위가 있다면 엄중하게 처벌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와 재벌의 2분법적 구도에 기초하고 있다. 국가를 약자, 재벌을 강자로 비약시키고 있다. 대중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경제민주화 봇물에서 ‘숨겨진 기회비용’을 읽어야 한다. ‘성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 실종이 그것이다. 모든 정파가 경제민주화에 함몰되면서 ‘누구도 어떻게 성장 페달을 밟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일자리 창출에 역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