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희망을 찾자-하①] 복지, 국가재정 구조개혁 통해 재원 확대 복지사각 없애야

입력 2012-10-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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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법개정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4월 서울 종로구 보건복지부 앞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집단 수급신청 선포 기자회견을 갖고 "가난은 가족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한때 건설사를 운영했던 최갑용(66)씨는 외환위기 이후 빚더미에 올랐고 신용불량자가 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폐지 줍는 일뿐이다. 힘들게 사는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 하루 생활비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바로 차압당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폐지 줍는 일밖에 없습니다. 신문광고를 찾아봐도 대부분 55세까지만 모집합니다. 육십 평생을 일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제일 걱정입니다.”

북유럽 사람들은 국가란 자신이 쓰러지면 일으켜 주고 등을 두드려 주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많은 세금을 내지만 그 세금이 제대로 쓰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다.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가 사상 최대의 이익잉여금을 쌓아두고 있는 10대 그룹 계열사들에는 후한 대신 직장인들에게는 철저한 징수원칙을 고수하고 있다고 여긴다.

또 제대로 세금을 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게 없다고 푸념한다. 저소득층부터 이제껏 국가 복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중산층까지 가세하며 “피부에 와 닿는 혜택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국가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분노가 커진 데에는 체계적이고 정교하지 못한 복지정책도 한몫했다. 2006년 노무현 정부는 ‘6세 이하 무상 입원비’ 정책을 도입했다가 2년 만에 폐기했다. 이명박 정부는 12세까지 필수 예방 접종 비용을 전액 국가가 부담하는 것을 공약했지만 실시하지 않았다. 정부가 7개월 만에 폐기해 논란이 된 0~2세 무상보육 역시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우리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2011년 기준 1.24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 은퇴 등으로 유례없이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잇따른 정책 실패로 곳곳에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국가복지 영역은 국민연금, 실업수당, 건강보험급여 등 4대 사회보험과 빈곤층을 돕는 공공부조다. 하지만 사각지대가 광범위해 각 가정이 그 빈틈을 메우고 있다.

중산층은 한국의 국가복지가 빈곤층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빈곤층에 속하나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은 410만여명으로 전 인구의 8.4%다.

국민들의 분출하는 복지 욕구에 편승해 대선후보들은 달콤한 공짜복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대부분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하다. 정권을 잡은 이후 적자재정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도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제도의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의 정부 예산은 그 규모가 작은 데다 경제 분야 비중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나라 살림 자체가 작다보니 복지에 소요되는 돈은 후순위로 밀려 “복지에 쓸 돈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내년도 정부 복지예산은 올해 92조6000억원에서 4조5000억원이 증가한 97조1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정부는 예산 편성 과정에서 ‘맞춤형복지’의 원칙에 따라 사회안전망을 보다 촘촘히 짜고 저소득층·장애인·여성·아동·노인 등 수혜 대상별 서비스를 늘리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외형적으로는 복지지출이 대폭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액수 자체는 사상 최대지만 내년도 전체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8.4%로 올해(28.5%)보다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정부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액을 올해보다 8000억원(3.4%)늘리기로 했다. SOC예산은 토목공사 투자 과잉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3년 연속 감소해왔지만 최근 경기 부양을 이유로 다시 늘려 잡았다.

정부 재정지출의 중심축을 복지로 전환하는 것과 함께 지출을 효율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효율적인 예산집행으로 눈 먼 나랏돈에 대한 국민 불신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공공연구소는 SOC 분야 등의 낭비적 지출 구조 개혁을 통해 10조~15조원의 복지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민이 직접 예산 감시에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세 부담을 늘려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재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이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해 사회보장에 국한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 연구위원은 부자증세가 사회형평성에는 맞지만 재원 규모가 작아 이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지나치게 많은 공제를 정리하는 방안과 소비세·소득세 등 복합 과세를 구성해 여러 가지 항목에 부과한 뒤 사회보장에 직접 투입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복지확대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증세가 필요하다. 다음 정권 말기 정도 명시적으로 ‘보편증세’로 가되 지금 당장은 토건 지출을 줄이거나 고소득자 중심으로 한 증세를 통해 단기적으로 필요한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적극적으로 재원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그 재원 안에서 복지 지출을 연계시키는 방법이 있다”면서 “균형재정론이나 국가 채무 때문에 복지를 억제하자는 논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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