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32] 건선의 원인 아홉 번째, 갱년기

입력 2012-10-1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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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동약한의원 원장 양지은
40대 후반 폐경기에 접어들면서 얼굴이 술을 마신 사람처럼 자꾸 붉어지는 안면홍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수시로 전신에 열이 오르다가 진땀이 나면 열이 내려가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자꾸 화가 나거나 우울해지는 등 감정의 기복도 심해지고 가슴이 답답하면서 안에 뜨거운 열이 꽉 찬 듯한 느낌도 생겼습니다.

단순한 갱년기 증상으로 진단 받았는데, 시간이 가도 증상은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심해지면서 영화관처럼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가슴이 답답해서 차분히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유 없이 불안해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자꾸 한숨을 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손·발바닥이 빨갛게 되고 각질이 벗겨지면서 갈라지더니 결국 수족장 농포증, 손발 건선으로 진단받았습니다. 50대 여자 환자분의 사례입니다.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 시기를 전후하여 기존의 건선 증상이 악화되거나, 처음으로 건선이 나타나는 것은 중년의 여성 환자들에게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제 2의 사춘기라고도 불리는 갱년기는 폐경 전후 수년에 걸친 기간으로 청소년의 사춘기 이상으로 신체적·정서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대개는 40대 중·후반에 서서히 또는 급격하게 진행되는데, 최근에는 환경상의 변화로 인한 다양한 원인 때문에 30대에 폐경이 나타나는 조기폐경 환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갱년기에는 여성 호르몬의 대표인 에스트로겐을 비롯한 일련의 호르몬 분비에 큰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안면홍조이며, 열이 위로 솟구치는 상열감(上熱感)이나 진땀이 나는 증상,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숨 쉬는 것이 답답한 증상, 두통이나 관절통, 불안감, 불면, 무기력증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고지혈증이나 골다공증, 그리고 심혈관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피부 역시 갱년기를 지나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주로 건조함이 심해지고 가려워지면서 때로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이 계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피부가 건조해지고 가려움을 쉽게 느끼는 예민한 상태로 바뀌는데다 얼굴을 비롯한 전신에 열이 수시로 오르는 증상까지 겹쳐지면 건선이 나타나기 쉬운 조건이 갖춰지게 됩니다.

게다가 에스트로겐 감소로 나타나는 갱년기 증상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증상과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많을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래서 수년이 넘도록 갱년기 증상이 계속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화병이 있었다거나, 화병인 줄 알았는데, 이미 갱년기에 접어들고 있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오랫동안 많은 일들을 참으며 화를 쌓아온 경우가 많다보니 갱년기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몸도 마음도 극심한 변화와 갈등을 겪을 때, 화병이 함께 터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때는 일반적인 갱년기에 나타나는 상열감이나 안면 홍조 등의 증상보다 한층 심한 열증(熱症)을 보다 긴 기간 동안 겪게 됩니다. 그러면 건선의 또 다른 원인인 화병이 더해지게 되니 건선이 나타날 확률은 더 높아집니다.

전신에 파도처럼 열이 밀려왔다 내려가는 증상이 심할 경우 건선이 전신에 나타날 수 있으며, 손이나 발바닥이 후끈후끈할 정도로 열이 난다면 수족장 농포증, 즉 손발 건선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머리가 뜨끈할 정도로 열이 오르는 증상이 자주 나타나는 경우에는 두피 건선이 나타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이처럼 갱년기는 인생의 중반기에 맞게 되는 엄청난 신체적·정신적 변화로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는 이후의 건강을 좌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골다공증이나 고지혈증, 심혈관질환 등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불안이나 우울감, 그리고 홍조증이나 열감 등의 증상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갱년기 증상에 겹쳐 화병이나 건선이 나타나더라도 너무 우울해하실 것은 없습니다. 평균 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지금, 갱년기는 앞으로 절반도 넘게 남은 생을 보다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중간 정산’의 시기라 생각하시고, 그 동안 안에만 쌓여 있던 엄청난 화를 드디어 밖으로 빼낼 수 있는 계기로 삼으신다면, 보다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도움말 : 강남동약한의원 원장 양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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