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PD는 사극의 어제이자 오늘 그리고 내일의 방향타
“정신 없어요.”그의 목소리는 치열한 열정의 강행군의 증좌다. “시청자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 충족과 외국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완성도와 감동이 있는 사극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며 촬영을 시작했어요.”경북 문경새재, 경기 양주, 그리고 용인, 일산을 오가며 촬영을 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게 없어. 이 감독은 밤에 다들 오들오들 떨고 기다려도 찍을 장면 전체를 일일이 다시 점검하고 촬영 하는 거야. 작업 늦어지고 촬영 힘들어도 누구하나 불만이 없지. 이감독을 믿으니까.”우리 시대 최고 연기자 이순재가 ‘허준’‘이산’에서 9월부터 새로 시작하는 ‘마의’까지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며 느낀 점을 말하며 거명한 ‘이 감독’은 바로 한국 사극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전설인 이병훈PD다.
MBC에서 방송할 50부작‘마의’는 조선 후기 말을 고치는 수의사로 출발해, 어의 자리까지 올랐던 실존인물 백광현의 파란만장한 삶과 심오한 의학세계를 다룬다. 이병훈PD는 “많은 작품을 했지만 새로 촬영에 돌입하니 설레고 긴장이 된다. 말과 소를 치료하는 수의사에서 조선 최초의 한방 외과의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백광현의 생애를 드라마로 담겠다. 극의 품격, 주제의식, 완성도 면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1970년 MBC에 입사해 ‘113수사본부’‘제3교실’등을 연출하며 PD로서 쾌조의 스타트를 한 이PD는 사극 조연출을 하다가 사극의 맛에 빠졌다고 했다. 1978년 ‘역사의 인물’을 시작으로 장노년층중에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암행어사’, ‘조선왕조 500년’ 시리즈 중 ‘설중매’ ‘인현황후’ ‘임진왜란’ , 60%대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며 한국 사극계의 판도를 흔든 ‘허준’, 소설원작을 완성도 높게 드라마화 한 ‘상도’, 사극 한류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대장금’‘이산’‘동이’등을 연출한 이병훈PD 이기에 그와 사극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나의 길은 사극이다. 내젊은 날을 바쳐왔고 앞으로 바치게 될 길이 바로 사극이다. 사극덕분에 영광을 얻었고 숱한 날 고통을 겪었고 뜻하지 않은 기쁨을 누렸다.”
찬바람에 스산함 마저 느껴지는 1999년 가을날 전남 순천의 낙안 읍성 마을에서 진행된 ‘허준’촬영 때도, 40도의 엄청난 고온과 습기로 움직이기조차 힘든데다 중국 구경꾼들이 밀려드는 중국 베이징의‘상도’촬영장에서도, 그리고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부는 ‘대장금’의정부 세트장에서의 야간 촬영시에도 이병훈PD는 혼신을 다해 연출을 했다. 때로는 쉰 목소리로, 때로는 직접 연기를 선보이며, 때로는 3일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사극의 완성도를 위해 치열한 열정을 쏟았다. 10여년 넘게 촬영장에서의 그런 이병훈PD를 보면서 그 열정에, 그 치열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이병훈PD가 사극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신화로 평가받는 것은 단순히 그가 수많은 사극을 ,그것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사극을 연출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정통사극에 뛰어난 연출력을 보이기도 하지만 시대와 트렌드, 그리고 대중의 정서에 따른 진화된 사극의 지평을 확대해왔다. 소재에서부터 대사, 영상, OST에 이르기까지 한국사극의 스펙트럼을 광활하게 확장시킨 것이다. 현대적 구어투의 대사와 트렌디 하고 감각적인 영상, 주제와 등장인물의 성격에 부합하는 세련된 OST 등 사극의 진화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병훈PD다. 이순재는 “한국 사극의 발전에 있어 이병훈PD가 큰 몫을 했다. 이병훈PD와 작업을 할 때마다 작품의 완성도와 진화를 체감할 정도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오늘도 드라마라는 꿈을 꾸지만 그것은 나만의 꿈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 특히나 앞으로 자라날 세대들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것이다. 작으나마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 내가 살아있는 동안 할 일은 오직 그것이다.”
사극의 거장, 이병훈PD는 ‘마의’를 통해 어떤 꿈을 꾸게 할까. 그리고 한국 사극의 지평은 얼마큼 확장될까.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