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돌아보니…
◆ 제작비 다이어트→흥행은 ‘UP!'
상반기 흥행 코드는 ‘깜짝 주인공’으로 압축된다. 지난해 여름 시즌 블록버스터 ‘빅4’ 가운데 ‘최종병기 활’을 제외한 ‘고지전’ ‘퀵’ ‘7광구’가 참패했고, 400억원 투입한 대작 ‘마이웨이’는 영화사에 남을 기록적인 실패를 거뒀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영화계로 몰린 투자금의 이탈로 이어졌다. 썰물에 비유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일부 제작대기 중이던 대작 영화들이 앞 다퉈 중단을 선언했다.
‘호랑이 없는 골에 여우가 대장 노릇한다’는 말이 있던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중소규모 영화의 약진이 이 시기에 두드러졌다. 올해 상반기 최고 화제작은 누가 뭐래도 ‘부러진 화살’이다. 흥행을 보장할 수 없는 장르의 한계, 노장 감독의 뒤쳐진 감각을 우려하는 시선 등 핸디캡이 상당했다. 특히 ‘석궁 교수’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내용은 재미와 흥행 면에서 너무 무겁단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언론 시사회 뒤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대중들 역시 환호했다. 순제작비 5억 원 총 제작비 15억 원의 초저예산 영화인 ‘부러진 화살’은 최종 누적 관계수 346만명을 기록했다. 수익만 250억 원에 육박했다. 메가톤급 흥행을 기록했다.
‘로맨틱 코미디’를 강세도 상반기 흥행 코드다. 황정민-엄정화 투톱의 ‘댄싱퀸’은 정치색이 짙은 인상을 주며 일부 언론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황정민과 엄정화가 엮어내는 잔재미와 의외의 탄탄한 스토리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400만명이 두 사람의 애드리브에 녹아 내렸다.
‘겨털녀’ 신드롬을 일으킨 공효진 주연 ‘러브픽션’도 올해 주목할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총 170만명을 동원했다. 하정우-최민식 투톱과 김성균이란 걸출한 신인, 곽도원 등의 재발견을 이뤄낸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460만명 이상을 모았다. 소문에 걸 맞는 성적표였다.
‘건축학개론’과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문자 그대로 ‘깜짝 흥행’의 주인공이다. ‘첫사랑’과 ‘납뜩이’ 조정석을 스타덤에 올린 ‘건축학개론’은 ‘결코 멜로물은 성공할 수 없다’는 충무로 공식을 단박에 깨버렸다. 또한 ‘내 아내의 모든 것’ 역시 임수정의 파격 변신과 류승룡의 카사노바 연기가 화제를 모으며 2030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각각 409만명과 445만명을 동원했다.
이밖에 주목할 만한 흥행 코드로 ‘19금’ 영화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출연 여배우들의 체모 노출로 논란이 된 ‘은교’와 제목부터 야릇한 ‘간기남’, 칸영화제 경쟁부분 진출작 ‘돈의 맛’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후궁 : 제왕의 첩’ 등이 노출 영화 붐을 조성했다.
◆ 흥행 공식? 이젠 옛말
기대치 않은 영화의 흥행이 쏟아지면서 깨져버린 충무로 공식도 눈길을 끌었다. 전통적으로 극장가의 비수기로 꼽히는 2~3월에 한국 영화의 강세가 눈에 띄게 두드러진 것.
지난 1월 ‘부러진 화살’과 ‘댄싱퀸’ 흥행이 2월까지 이어졌고, 2월에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러브픽션’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3월은 ‘화차’와 ‘건축학개론’이 이어받았다.
무려 12주간 한국영화 천하가 이어졌던 시기다.
이 시기 한국영화의 선전은 별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극장에 내걸리지 못한 점도 있다. 물론 지난해 말 개봉해 올해 초까지 흥행한 ‘미션임파서블4’와 지난 4월 개봉한 ‘어벤져스’가 기록한 700만 돌파는 ‘역시’란 말을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당분간 한국영화의 강세는 이어질 것이란 분위기다.
물론 호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투자금 회수에 따른 여러 영화의 제작 연기로 인해 불거진 대기업 자본 주도의 수직계열화 문제, 불법 영화파일 유출에 따른 콘텐츠저작권 문제, 음악저작권협회와 영화계의 저작권 갈등은 풀어야 할 숙제로 또 다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