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고깔 챙모자, 마법의 빗자루, 새카만 망토…. 우리네 기억 속에 있는 마녀는 외모도, 성격도 심술궂은 악당이다. 그래서 허수아비, 양철나무꾼, 겁쟁이 사자와 함께 오즈를 탐험하던 ‘오즈의 마법사’도로시 일행에게 있어서 최대 악당은 서쪽 나라의 ‘마녀’들이었다. 매번 악의 축으로 비춰지는 마녀들도 알고 보면 할 말이 많다. 빗자루를 내려두고 오즈에서 날아온 사랑스러운 두 마녀, 젬마 릭스(초록 마녀 엘파바 역)와 수지 매더스(금발 마녀 글린다 역)를 만났다.
◇ 젬마 릭스, 미운오리새끼 엘파바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 탓에 또래 마녀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소위 ‘왕따’다. 남다른 피부색에 차가워 보이는 이목구비까지 사실 첫 눈에 인기를 끌기는 쉽지 않은 외모의 엘파바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따뜻한 내면을 드러내며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초록색 분장을 지우고 여배우 젬마 릭스로 돌아온 그는 내면뿐만 아니라 외면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릭스는 “‘왕따’ 엘파바를 지난 4년간 연기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엘파바를 통해서 따돌림을 피하기 위해서 현실에서는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할 지 배우게 됐다”고 전했다.
엘파바 역을 연기하는 고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극중 ‘왕따’이니만큼 앙상블과 함께 하는 무대가 적어 대기실에서도 혼자 있기 일쑤였다. 릭스는 “분장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 가끔 생사만 확인하러 오는 정도”라면서 “왕따 캐릭터이니 오히려 다른 배우들이 날 찾지 않는 게 편하다”고 쿨한(?) 면모를 과시해 웃음을 자아냈다.
상대역인 글린다가 발랄한 편이라면 엘파바는 상대적으로 날카롭고 진중한 면이 있는 캐릭터다.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도 릭스와 닮은 꼴이다. 기자회견 내내 긴 답변보다는 단어 하나하나 힘을 줘 대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릭스는 “초록색 피부 분장을 끝내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소품인 가방을 손에 쥐고 나면 그 순간부터 나는 엘파바”라고 말했다.
◇ 수지 매더스, 러블리 공주병 글린다
조명을 반사할 듯 빛나는 금발의 마녀 글린다는 오즈의 인기녀다. 발랄한 성격 탓에 어딜 가나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이 같은 자신의 강점을 본인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공주과’다. 수지 매더스는 누가 봐도 한 눈에 “아, 당신은 글린다군요”라고 알아 볼 정도로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글린다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금발머리는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이다. 매더스는 “염색한 것이 아니라 나는 태어날 때부터 금발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금발 미녀=텅 빈 머리’라는 선입견을 의식한 듯 “나는 금발이지만 멍청하지 않다. 똑똑한 금발머리다”고 말해 현장을 폭소케 했다.
‘위키드’에 출연한 것을 ‘행운’이라고 표현한 매더스는 성격 역시 글린다와 쌍둥이마냥 닮은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기자회견 내내 밝은 미소와 재잘거림에 가까운 장문의 답변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글린다 특유의 기분 좋은 에너지가 회견장에 가득 찼다.
극중 엘파바를 통해 나르시스트 공주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는 글린다처럼 4년간 ‘위키드’에 출연하면서 젬마 릭스와의 우정을 통해 배우로서, 한 인간으로서 크게 성장했다. 매더스는 “사실 어렸을 때는 나도 공주병이 있었다”면서 “다른 형제가 관심을 받으면 샘을 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많이 성장했다”면서 “2막의 글린다와 닮았다”고 부연했다.
젬마 릭스와 수지 매더스가 열연하는 뮤지컬 ‘위키드’는 오는 5월31일부터 7월3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한다. 문의 1577-3363
* 뮤지컬 ‘위키드’는?
“도로시가 오즈에 떨어지기 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명작 ‘오즈의 마법사’를 유쾌하게 뒤집은 동명 소설(그레고리 맥과이어 작)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위키드’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 오즈의 두 마녀에 관한 이야기다. 도로시가 물을 뿌려 없애버린 나쁜 녹색마녀가 사실은 불같은 성격 때문에 오해 받은 착한 마녀이며, 도로시를 도와준 착한 금발마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인기를 독차지하던 허영덩어리 소녀였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전혀 닮지 않은 두 소녀마녀가 어떻게 친구가 됐는지, 어떻게 해서 둘이 각각 나쁜 마녀, 착한 마녀가 됐는지…. 마법에 홀린 듯 매혹적인 스토리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