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황제경영 시대 종언]총수일가 중심 지배구조‘확’뜯어 反기업 정서 날린다

입력 2012-04-2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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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작업 박차

#지난 2003년 3월 외국계 자산운용회사인 소버린의 자회사 크레스트 시큐리티는 SK(주)의 지분을 집중 매입하며 14.99%의 지분율로 2대 주주에 올라섰다.

당시 SK그룹은 부당내부거래,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등으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었고, 최태원 회장은 구속된 상황이었다. 당시 소버린은 반재벌 정서를 가진 국내 일부 주주들과 SK노조의 의결권을 이양받았다. 이후 경영투명화와 기업지배구조개선 등을 요구하며 SK그룹 이사진 교체와 적대적 M&A(인수․합병)를 시도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올해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 ‘코스피200’ 기업의 안건을 분석한 결과, 부적격 임원을 추천한 건수가 177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집단 소속회사가 부적격 임원을 추천한 사례가 더 많은데 이는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를 뽑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재벌 총수일가나 경영진 등 총수의 영향력 아래 놓인 인물들이 포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은 SK(주)의 2대주주로 오른 뒤 2004년 3월 열린 SK(주)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경영권을 위협했다. 당시 소버린이 이같은 요구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SK그룹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틈타 SK(주) 지분을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에서 소버린측 인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단순히 반재벌 정서 때문만이 아니라 그동안 재벌들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재벌 총수 일가 배불리기 등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실제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전문가 1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정책에 대한 의견 조사’에서도 ‘지배구조 개선, 경제력 집중억제’(37.2%)가 향후 기업정책에서 중점을 둬야 할 부분으로 나타나는 등 지배구조 개선 문제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주요그룹들의 지배구조개선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과거 상호출자나 외환위기 이후 순환출자구조 형성에 따른 폐해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재벌그룹들은 지배구조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기업지배구조가 선진화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폐쇄적이고 총수일가 중심의 기업지배구조는 결국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총수일가의 주머니만 채우는 현상이 나타났다. 총수 2세들은 계열사의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세금을 내지 않고 거액의 부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또 2세들이 경영무대를 넓히는 과정에서 골목상권 침범 등 서민경제와 마찰을 빚었던 점도 궁극적으로는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에 기인한다.

이런 현상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반재벌 정서를 확산시켰고, 일부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현상을 야기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상에서는 하나의 부실이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점도 지배구조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삼성그룹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4월 12일 현재 자산 255조원)이 문제가 됐을 때 국가 전체위험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SK-소버린 사태는 국내에 외국계 펀드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국내 재벌들의 지배구조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SK그룹은 지배구조개선작업에 박차를 가해 2007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선진적 지배구조로 평가되는 지주회사 체제도 문제점은 발생했다. 민주통합당에 따르면 지난 2007년 4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한도를 올리고(100%→200%), 자회사와 손자회사의 주식보유기준을 완화했다.

민주통합당은 “재벌의 소유 구조를 보다 투명히 하고, 소수 지분에 의한 계열사 지배를 방지하기 위해‘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하고, 지주회사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법을 개정했다”면서 “하지만 결과는 손자회사와 증손회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출자를 통해 지주회사 체제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강화됐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이 총선 직전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과 순환출자금지규정 등 재벌개혁에 대한 내용을 공약에서 제외시켰지만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이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말기 들어서면서 대기업들의 사회적책임 실천이 강조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지배구조개선까지 선거정국을 틈타 개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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