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 나선 기업인 출신 후보 얼마나 있나
주요 정당 모두 이번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재벌 개혁을 필두로 한 경제 민주화를 내건 것이 기업인 출신들의 출마 발목을 잡았다. 이른바 ‘기업 때리기’ 공약을 기업인 출신 후보가 외치자니 앞뒤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인 출신 보다 노동계와 학계, 관료 출신 후보가 많아졌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대부분의 기업인 출신 후보의 당적을 보면 ‘친기업’ 성향이 짙은 새누리당이 압도적으로 많다.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 후보로는 이상직 전 이스타항공 회장과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대표 정도가 두드러진다.
◇현대가 vs 현대맨=246개 전국 지역구 출마 후보 중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인 출신 후보는 서울 동작구 을 지역의 정몽준 새누리당 후보와 이계안 민주당 후보. 두 후보 모두 서울대 출신이며 ‘범 현대맨’이다.
정 후보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6남이자 현대중공업 사장을 지낸 현대중공업그룹 대주주다. 이 후보는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캐피탈 회장을 지냈다. 특히 두 후보의 직장생활 출발점이 현대중공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1951년생인 정 후보가 1975년, 한 살 적은 이 후보는 1976년에 각각 입사했다.
정치인 경력으로는 정 후보가 13대부터 18대까지 6번 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된 ‘고참급 의원’인 반면 이 후보는 17대 총선에서 4년간 의정 생활을 했다. 정 후보는 울산 동구에서 5번(13대~17대), 서울 동작구 을(18대)에서 1번 당선됐고, 이 후보는 서울 동작구 을(17대)에서 당선됐다.
최근 판세는 정 후보의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현직 의원인 데다, 20년 이상의 의정 경력을 자랑하는 중진 의원으로서 전국적인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정 후보는 “자신을 부잣집 아들로만 보지 말아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이 후보는 “대기업을 아는 사람이 기업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IT·벤처업계에서 신화적인 존재로 불리는 전하진 전 한글과컴퓨터 대표는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전략공천을 받아 IT벤처타운이 밀집한 경기도 성남 분당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
전하진 후보는 전통적 여당 강세 지역인 이곳에서 김병욱 민주당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김 후보는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의 정책특보 출신이다. 최근 판세는 전 후보의 근소한 우세가 점쳐지고 있다.
IT업계의 거물급 인사였던 석호익 전 KT 부회장(CR부문장)도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선부터 삐걱거렸다. 과거 KT 부회장 시절 여성 비하 발언이 문제가 됐다.
그는 새누리당으로부터 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지역의 공천을 받았으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는 비난 때문에 공천권을 박탈당했다. 결국 석 후보는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석 후보는 그를 대신해 이 지역에 출마한 이완영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펼치고 있다.
민주당 텃밭인 전북 전주 완산구 을에서는 이상직 전 이스타항공 회장이 출마했다. 이 후보는 2008년 18대 총선 때 이 지역에서 출마했으나 실패했다. 재도전에 나선 이번 선거의 상대는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 정 후보는 이명박 정부 초기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냈다.
이 지역은 야권후보 단일화 도출에 실패해 통합진보당에서 이광철 후보가 출마해 3파전 양상이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이상직 후보가 정운천 후보에 근소하게 앞서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의 강세 지역인 서울 서초구 갑에서는 40대 금융맨 출신 이혁진 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대표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 김회선 새누리당 후보에 뒤지고 있다.
◇건설사 CEO 출신 후보, ‘주택 보급’ 공약 눈길=이번 총선에는 건설업계 CEO 출신 후보와 여성 기업인 출신 후보들이 등장해 정치인 변신을 꾀하고 있다.
건설업계 CEO 출신으로는 박덕흠 원화건설 대표와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돋보인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충북 보은군·옥천군·영동군 지역에 출마한 박 대표는 한국전문건설협회 중앙회 회장을 지냈다. 건설회사 사장 출신답게 ‘서민형 임대아파트 조성’ 등을 공약으로 내건 그는 이재환 민주당 후보, 심규철 무소속 후보와 접전을 벌이고 있다.
성완종 회장은 당초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자유선진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그는 선진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산시·태안군 지역에 출마했다.
박덕흠 후보와 마찬가지로 ‘중소형 서민주택 보급’ 등을 공약으로 내건 성 후보는 서산시장을 지낸 유상곤 새누리당 후보와 접전을 펼치고 있다.
서울 도봉구 갑 지역에서 출마한 유경희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돋보이는 여성 기업인 출신 후보다. 그는 2001년부터 유한콘크리트 대표이사를 맡으며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경기지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유 후보는 서울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고전하고 있다. 유 후보의 상대는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미망인인 인재근 민주당 후보. 최근 판세는 유 후보의 열세가 점쳐지고 있다.
이외에도 여성 기업인 출신 후보로는 KT네트웍스에서 전무를 지낸 권은희 새누리당 후보(대구 북구 갑)와 동도백화점 대표 출신의 배영애 민주당 후보(경북 김천시) 등이 돋보인다.
충남 천안시 을 지역에서 재선을 노리는 김호연 새누리당 후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동생으로 빙그레 회장을 지냈다. 그는 전통적인 ‘충청당(자유민주연합·자유선진당)’ 텃밭인 이곳에서 2010년 보궐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달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김 후보는 2010년 보궐선거에서 맞붙었던 박완주 민주당 후보에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인천 중구·동구·옹진군 지역에서 재선을 노리는 박상은 새누리당 후보 또한 기업인 출신이다. 박 후보는 인천 월미도에 본사를 둔 대한제당 사장과 인천지역 민영방송이었던 iTV 경인방송 회장을 역임했다.
박 후보는 17대 총선 때 이 지역에서 당선된 한광원 민주당 후보와 18대 총선에 이어 2회 연속으로 맞붙고 있다. 최근 판세는 거주자 평균 연령대가 높고, 전통적 여당 강세가 뚜렷한 지역 특성 때문에 박 후보가 우세하다.
경기 부천 오정구에 출마한 3선의 원혜영 민주당 후보도 유력 정치인 이전에 기업인 출신이다. 그는 아버지 원경선씨가 운영하던 유기농법 농장 ‘풀무원농장’을 기반으로 1981년 풀무원식품을 창업해, 1986년까지 경영에 참여했다.
원 후보 역시 지역구 맞상대인 안병도 새누리당 후보에 우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공기업 사장 이력을 가진 후보들도 이번 선거에 대거 출마했다.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전 코레일 사장, 서울 노원구 병), 전용학 새누리당 후보(전 조폐공사 사장, 충남 천안시 갑), 박대동 새누리당 후보(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울산 북구), 홍문표 새누리당 후보(전 농어촌공사 사장, 충남 홍성군·예산군) 등이 돋보인다.
탄광지역으로 유명한 강원도 태백시·영월군·평창군·정선군 지역의 후보 2명(김원창 민주당 후보, 류승규 자유선진당 후보)은 나란히 한국석탄공사 사장 출신이다. 새누리당 소속의 염동열 후보도 석탄공사에서 감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