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규의 과천담론]한수원의 이상한 홍보

입력 2012-04-05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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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규 경제팀장

과전이하(瓜田李下)라는 말이 있다. 기자와 같은 세대라면 중학교 한문 시간에 일찌감치 배웠던 사자성어다.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쓰지 말라는 뜻으로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와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을 합친 말이다. ‘의심받을 짓을 하지말라’는 얘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된다.

하지만 중학교 이상 학업을 마친 사람이라면 충분히 교훈으로 삼을 만한 것을 지키지 못하는 공기업이 있어 답답하다. 원자력발전소에 전기공급이 중단돼 방사능 누출로 이어질 뻔한 사실을 한 달 동안이나 숨겨 전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됐던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홍보를 빌미로 주민들에게 향응을 제공해 구설수에 올랐다.

강화도 주민들과 정당 관계자들은 강화도 인근에 인천만조력발전소 사업을 추진 중인 한수원이 최근 조력발전 홍보를 이유로 강화군 주민들에게 조력발전소를 견학시키면서 횟집에서 회와 술을 접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영광원자력발전소에도 일부 주민들을 데리고 가서 구경을 시켜줬다.

견학과 행사중의 식사 대접이 평소 같으면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러한 접대가 선거기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조력발전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각 정당이 정치 공약으로 내세운 시점에서 공기업 한수원의 행태가 일부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로 비쳐질 수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강화군선거관리위원회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한수원에 선거기간 중 시찰 중단을 권고할 정도로 홍보를 빌미로 한 한수원의 주민 접대는 중학교 때 배운‘과전이하’를 떠올리게 한다. 좀 심하게는 중학교 때 배운 걸 떠올렸어도 이런 오해를 살 일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까지 든다.

한수원의 지나친‘홍보 집착’은 최근 인력 채용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수원은 정부의 원자력발전소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수십억원을 들여 홍보전문 인력 채용에 나섰다. 원전의 설비 보강이나 안전정책 등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쏟아야 할 예산이 여론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인력 채용에만 남용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원전사고에 대해 지적됐던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에 앞서 20억원 안팎의 예산을 들여 홍보전문가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며 언론과 일부 지역에서의 비판이 거셌다.

원전사태에 대한 당사자인 한수원이 종합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한 상태에서 선거 개입과 과도한 홍보인력 채용에만 열을 올리는 걸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장 중요한 사안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공기업의 이 한심함에 매번 내야하는 혈세가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지 않을까?

김종신 한수원 사장은 20여 일전 정부 과천청사를 찾아 원전 사고 은폐 파문에 대해 “투명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해 굉장한 자괴감을 느끼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 책임이라는 말의 무게감이 행동으로 옮겨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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