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혁 금융부장
우선 축하를 드립니다.
행원으로 시작해 13계열사, 임직원 2만 여명을 이끌어가는 금융지주사 회장님이 되셨습니다. 뿐 만 아니라 자산 규모로 국내 두 번째 금융지주사 수장이 되셨으니 말 그대로 꿈을 이루겼습니다.
회장으로 취임하시기 며칠 전 행장 집무실에서 회장님을 만났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미리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회장님은 손사래를 치시며 “인사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겸양(謙讓)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면서“나는 야전사령관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야전사령관은 조직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린다” 며 거취에 대해 초연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후계자 승계가 권력게임 돼선 안 돼
취임 이후 언론과 첫 공식 인터뷰를 한 날, 회장님의 표정은 한결 밝고, 젊어보였습니다. 그날 회장님은 본인을 ‘마무리 투수’에 비유하셨습니다. 아마도 그룹을 일군 김승유 전 회장님의 바통을 이어받은데 대한 역할을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회장님은 그 자리에서 리더관도 언급하셨습니다. 회장님은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나갈 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주는 헬퍼(Helper)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다 조직에 살이 되고 뼈가 되는 말씀입니다.
회장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통해 고언(苦言) 아닌 고언을 드릴까 합니다. 회장님에겐 하나금융지주의 지배구조를 공고해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회장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배구조를 흔들기 위한 보이지 않은 손이 얼마나 많습니까. 회장님 본인도 마음에만 담아 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많이 겪으시지 않았습니까.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건 하나금융 뿐 아니라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과제입니다.
CEO 후계자 승계계획은 전임 CEO가 사임을 발표하는 순간에 수립하는 게 아니라 신임 CEO가 선임되는 그날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CEO 승계프로그램이 잘 가동되는 글로벌 기업들은 이를 철칙으로 따르고 있습니다. CEO 승계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위기관리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장님도 지금부터 CEO 승계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마무리 투수’ 나 ‘헬퍼’ 의 역할에서 벗어나 하나금융의 독립적이고 투명한 후계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나금융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회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GE와 애플을 보십시오. GE는 회장 후보군 리스트가 3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500명을 추리고 다시 3명으로 압축하는 데 이사회는 이 중 한명을 후계자로 낙점합니다.
반면 애플은 어땠습니까. 스티브 잡스의 건강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 시장으로부터 싸늘한 평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경영지속성을 위해 준비된 CEO에게 경영승계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게 화근이었습니다.
누가(Who)가 아닌 어떻게(How) 낙점하냐가 관건
회장님, 회장님은 다른 금융지주사 회장님들과는 다른 위치에 서 계십니다. 은행원에서 행장을 거쳐 회장 자리에 까지 오르셨습니다. 그 만큼 조직을 지켜야 할 소중한 과제와 책무가 놓여있습니다. 하나금융이 회장님을 CEO로 배출한 만큼 후계자 승계도 첫째도 조직, 둘째도 조직을 위해 이뤄져야 합니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후계자를 고르고 최종 낙점을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후계자 낙점이 추한 ‘권력게임’ 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전 임직원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후계자 승계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권력이 감히 하나금융을 넘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회장님, 야전사령관을 뛰어 넘으십시오. 헬퍼에 만족하지 마십시오.
김승유 전 회장님께서 회장님께 “조직이 변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시장과 상품들이 그 조직을 무너뜨린다” 는 금언(金言)을 남기셨다죠.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준비된 후계자가 없으면 준비 안 된 후계자가 그 조직을 무너뜨린다” 고. 이런 점에서 회장님은 마무리가 아닌 선발투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