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감동있는 정치

입력 2012-02-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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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신 사회생활부장

한 방송사의 월화극 ‘샐러리맨 초한지’는 방송 3사 동시간대 프로 중 최강자지만 자체 최고 시청률이 20%를 넘지 못해 대박 드라마로 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하지만 초한지를 차용한 극중 인물의 이름과 독특한 구성으로 인해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탄탄한 구성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두 남자 주인공 항우(정겨운)와 유방(이범수)의 라이벌 대결은 촘촘하지 않다. 결국 유방이 승리하지만 승리의 과정은 디테일하게 그려지지도 않는다.

같은 시간대 경쟁사에서는 ‘빛과 그림자’라는 시대극이 방송된다. TV가 보급되기 전후, 극장식 카바레에서 공연하는 쇼단을 소재로 주인공 강기태(안재욱)의 사랑과 야망를 그린 이 드라마는 최근 ‘초한지’에 시청률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오히려 극의 완성도는 ‘초한지’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시 두터운 마니아를 두고 있다. 조금은 지루한 듯 하면서도 적절한 액션과 코믹을 섞으면서도 가끔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두 드라마는 시청률 2~3%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초한지’의 라이벌 항우와 유방을 비롯해 모든 등장인물은 ‘악인’으로 그려지지도 ‘선인’으로 묘사되지도 않는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치사한 술수를 다 버리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보니 시청자 역시 모든 등장인물이 밉지가 않다. 반면 ‘빛과 그림자’속 등장인물은 선과 악이 분명하다. 주인공 강기태는 깊음 배려심으로 주변 사람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신뢰를 얻는다. 전국구 건달과 겁없이 맞짱을 뜨다가도 상대가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걸 알고는 싸움을 중단하기도 하고, 자신을 배신하고 돈에 팔려 경쟁 쇼단으로 이적한 단원들을 미워하지 않고, 다시 돌아왔을 때 어떤 질책도 없이 가슴으로 품는다.

강기태의 반대편인 국회의원 출신의 청와대 국장인 장철환(전광렬)은 자신의 출세와 자리보전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기태를 괴롭히는 철저한 악역이다. 그에게는 연민을 느낄만한 배경도 없어 시청자의 공분을 산다.

두 드라마를 보면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현실에서 어떤 사람을 대할 때 더 희열을 느끼는가. 항우인가 유방인가, 강기태인가 장철환인가.

고등학교 시절 국민윤리선생이셨던 강모 선생께서는 수업시간에 선악설과 성선설을 설명하시다 뜬금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악설’이나 ‘성선설’이나 완벽한 사상은 아니다. 가장 완병한 사상은 ‘성악성선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사람도 없지만 태생이 악한 사람도 없다.”

국회의원 선거가 한달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도 전인데 이미 승자는 결정된 것처럼 단정짓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쏟아내는 정책만 놓고 따지면 쉽게 어느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재벌그룹 해체론에서 수백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묻지마식 복지정책까지 모든 것이 닮은 꼴이다. 공천혁명을 외치면서도 국민 대다수가 이제 은퇴했으면 하는 인물에게 꺼리김없이 공천을 준다. ‘보수’와‘진보’,‘민주’와‘반민주’‘여당’과 ‘야당’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인기’와 ‘비인기’가 정책결정의 기준이 된다. 모두 ‘선인’이 되고자 한다. 그러니 감동이 있을 턱이 없다. ‘본방사수’를 외치지만 정작 감동을 주지 못하는 ‘초한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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