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송강호와 마주했다. 40대 후반의 후덕한 옆집 아저씨 인상에 걸맞지 않게 스타일리시한 긴머리와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에서 보여 준 두둑한 뱃살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날 본 모습은 상당히 매끈한 몸매였다. 다음 달 20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출연을 위해 체코 출국을 앞둔 상태다.
송강호는 “먹고 살려니 바쁘다. 뭐 바쁘게 움직여야 돈이 들어오지 않나. 현재 설국열차 때문에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있는 중이다”면서 “워낙 대작이라 좀 걱정도 되는데 그 만큼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기본 제작비만 400억 원에 달하는 ‘설국열차’에 일찌감치 탑승을 예약한 송강호. 설레는 맘을 달래기 위함일까. ‘충무로의 시인’ 유하 감독의 신작 ‘하울링’에 도전했다. ‘도전’이란 단어를 굳이 쓴 이유가 있다. 송강호의 입장과 연출을 맡은 유 감독 모두에게 ‘송강호’란 이름 자체가 도전이었다.
그는 “우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극중 내가 맡은 ‘상길’ 배역은 존재감도 없는 단역에 불과했다. 원작 속에서도 그렇고. 그런데 얘기 자체에는 마음이 너무 끌렸다”면서 “수사극이란 외피를 쓰고 있지만 ‘하울링’의 본질은 드라마였다. 비주류에게 가하는 사회적 폭력과 가족에 대한 의미. 정말 멋지단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이건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며 손바닥을 ‘짝’하고 쳤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창동 등 충무로 스타 감독들과 모두 작업한 송강호. 유하 감독과는 첫 작업이다. 유 감독의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그는 “혀를 내둘렸다”며 손사래를 쳤다.
송강호는 “감독님이 시인 출신이시라 대사나 디테일에 굉장히 신경을 쓰시는 분이시다”면서 “감독님과 작업해본 후배들에게 어깨 너머로 ‘현장에선 결코 호락호락한 분이 아니다’란 얘기를 들어왔다. 때문에 촬영 들어가기 전에 나영이와 엄청 긴장을 했다. 한 마디로 ‘죽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어느정도 맞아 떨어졌다. 현장에서 유 감독의 연기 디렉션은 혹독했다. 때문에 송강호는‘하울링’에서 교과서 연기에 주력했다. 평소 출연 작품의 성격에 따라 애드리브를 적절히 사용했지만 이번 영화만큼은 대사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가져갔다는 것. 유 감독 역시 암묵적이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지켜줄 것을 요구했단다.
송강호는 “한 번은 감독님이 ‘해보고 싶은 데로 해봐라’ 하셔서 진짜 맘대로 해봤다. 그런데 모니터링을 하니 눈뜨고 못봐줄 정도였다”면서 “감독님이 시나리오대로 주문하신 이유를 그때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하울링’은 파도가 아닌 잔잔한 물결 같은 영화다. 그 물결을 흐트러트리면 전체가 엉키게 된다. 때문에 나 역시 시나리오에만 집중한 채 연기했다”고 덧붙였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송강호식 서포터 연기에 후배 이나영이 환골탈태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저 ‘예쁜 배우’가 아닌 이제 ‘배우’로서 평가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다.
그는 “원래 참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작품을 함께 한 적이 없어서 나도 대중들이 느끼는 (이나영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나영의 매력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이나영에 대해 “이슬 한 방울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 물방울 입자가 하나씩 모이는 느낌”이라며 “지금보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분명 엄청난 배우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후배 칭찬과 함께 최근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아들 얘기를 꺼냈다. 16세 이하 축구국가대표선수인 매탄고 1학년 송준평이 송강호의 아들이다.
송강호는 “아직 갈 길이 먼 어린 녀석인데, 너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서 걱정이 좀 된다”면서도 “다행스러운 점은 아들이 낙천적인 성격이고 쏟아지는 관심에 동요를 하지 않는다”며 대견스러워했다.
“흐흐흐흐흐 키키키키키...아이고 뭐라 해야 하나...이거 쑥스러워서 원. 함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