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비장한 증권업계 파부침주(破釜沈舟)

입력 2012-01-13 10:50수정 2012-01-1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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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부국장 겸 증권부장

"당신 여기 앉아요. 그 자리 맞습니까. 제대로 앉았습니까. 이리 이동해요."

주식워런트증권(ELW) 특혜 제공 혐의를 받은 증권사 대표를 수사하면서 검찰 수사관들이 해당 증권사 사장들에게 한 말이다. 검찰이 이같은 막말(?)을 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를 빼서 쉽게 자백을 얻어내기 위한 수사기법중 하나다. 사회부 경찰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보다 더 치사한 수사기법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신년을 맞아 증권사 대표이사 인사를 다니면서 들은 말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한번 나가게 되면 5시간 정도 걸립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불려다니다 보니 진이 빠질 정도였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검찰에 출두하는 사진이 언론에 보도된 뒤 고향 지인으로부터 ’너 어떻게 하다가 그렇게 됐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깜깜했습니다." 극한 수치심과 굴욕감을 느낄 만도 하다.

다행히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이들 사장님들의 말을 들어본 결과 참 심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이번 ELW 기소 건은 검찰이 수사할 대상이 아니다. 금감원 등 관련 기관에서 위법여부를 판단할 일이었지 성급히 검찰수사를 올릴 사안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 짓누르기 위한 꼼수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이 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장 여건 속에 증권업계가 겹악재로 시름하고 있다. 주식워런트증권(ELW) 특혜 제공 혐의를 받은 증권사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이 잇따르고 있지만 차가워진 시장은 되살아날 줄 모르고 있다.

수억원의 뒷돈을 챙긴 증권맨 줄구속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을 대행하면서 해당 기업으로부터 최고 8억원대의 뒷돈을 챙긴 4개 증권사 임원과 실무자들이 줄줄이 구속됐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를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소프트달러와 위탁매매수수료를 둘러싼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간 영업행태를 지적하는 여론의 질타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증권부 기자생활을 하던 지난 2000년대 당시 사회뉴스로 신랑감 1순위는 단연 여의도 증권맨이었다. 그러나 이말은 까다득한 옛말이 돼버렸다. 여의도 토벌작전에 증권업계는 꽁꽁 얼어붙은 한파 이상이다.

명퇴 칼바람도 불고 있다. 일부 증권사는 명퇴신청 받으면서 50대 이상 임원 안된 직원들(부서장급)도 다 나가라고 했다고 한다. 다른 증권사는 장기근속직원 40여명을 내몬다고 한다. 전에 없던 초강수 인원조정이다. 일부 증권사를 해체시켜 증권사 구조조정 분위기를 몰고 가야한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헤지펀드도 정착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금융투자업계의 대대적인 지각변동도 예고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증권사들의 수익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다 새로운 먹거리를 놓고 증권사간 치열한 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도 계속되는 펀드환매로 4년째 불황을 맞고 있다. 특히 하반기 불어닥친 유럽발 재정위기 재부각으로 세계 경기를 비롯한 국내 경기 전망 하향과 자리잡지 못한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이 금융투자업계의 수익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형사는 차지하고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프라임브로커와 헤지펀드 업무 등에서 소외되면서 ‘생존전략’찾기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신성장 동력 마련 미비로 상황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모 증권사 대표는 올해 신년화두로‘파부침주(破釜沈舟)’를 선정했다. 진(秦)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항우(項羽)가 쥐루(鉅鹿)의 싸움에서 출진(出陣)에 즈음해 타고 온 배를 가라앉히고 사용하던 솥을 깨뜨렸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동안 꾸준히 추진해왔던 조직정비, 제도개선등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그동안 다져온 내실과 갈고 닦은 기량을 바탕으로 올 한해는 전직원이 불퇴전의 각오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기로에 선 증권업계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더불어 다들 어렵다는 올해 증시 전망을 뒤엎고 시장이 활활 타올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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