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세종시 수정이 실패한 이유, 그리고 4대강 사업
행정복합도시(세종시) 수정 논란과 4대강 사업이 2009년을 달궜다.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와중, 세종시 수정에 불을 당긴 건 정운찬이란 인물이었다. 9월3일 이명박 정부 두 번째 총리에 지명된 그의 시작과 끝은 세종시였다. 당시 그는 “행정복합도시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수정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을 꺼냈다. 정권을 대신해 총대를 멘 것이다. 이를 시발점으로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쐐기를 박은 건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자신의 대선공약이었지만 각종 이유로 공약폐기를 선언했다.
이 대통령은 그 해 11월27일 특별생방송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대통령은 “원안대로 해야죠. 이런 쪽으로 분명히 이야기를 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국가를 위해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세종시 추진계획을 수정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평가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동시에 나왔다. 결과적으로는 세종시 수정안이 해를 넘겨 2010년 6월 29일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됐다. 야당 모두가 반대하는 상황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가 ‘원안 고수’ 입장을 취했고 친박계 의원들이 가세한데 따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유감스럽지만 국회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 실패의 책임을 지고 취임 10개월 만인 8월 11일 사임했다.
다시 2009년. 세종시 수정 논란을 즈음해 4대강 사업 예산도 도마에 올랐다. 사업예산은 6조7000억원. 이를 두고 여야 간 논란이 벌어졌다. 찬반이 나뉘어 몸싸움은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세종시 수정과 함께 ‘역사적 책무’로까지 규정하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독려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009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야당의 강렬한 저항 속에 본회의를 강행, 4대강 사업예산을 포함한 2010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예산안이 2년 연속 ‘강행처리’된 순간으로도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