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 국제부장
한 사람은 모범생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괴짜였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얘기다.
글로벌 기업인 중에서 두 사람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 경우도 드물다.
24일 전세계에 동시 발간된 잡스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가 화제다.
잡스와 게이츠는 1955년에 태어나 1970년대말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을 중퇴한 것도 같다.
처음에는 잡스가 앞서 나갔다.
1980년대 초까지 MS의 주요 수입원은 애플의 개인용컴퓨터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는 것이었다.
자서전에 따르면 잡스는 맥킨토시를 개발할 당시 게이츠가 애플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것을 원했다.
그는 게이츠가 있는 시애틀로 날아가 맥킨토시의 장래성을 열심히 설명했고 게이츠는 베이직(BASIC) 프로그램인 엑셀과 워드의 그래픽 버전을 개발하기로 약속했다.
두 천재의 만남은 한동안 이어졌다.
게이츠는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로 자주 날아가 맥킨토시 운영체제 프로그램의 개발 사항을 설명했다.
두 사람은 그리 잘 맞는 사이는 아니였다.
게이츠는 힘들게 개발한 소프트웨어에 대한 잡스의 시큰둥한 반응이 불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잡스의 건방진 태도였다.
잡스는 게이츠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단다.
“당신이 필요하지는 않아. 그러나 우리 일을 같이 할 수는 있을거야”
하버드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수재였던 게이츠가 속이 편했을리 없다.
컴퓨터 사용자를 위한 보다 나은 그래픽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는 목표는 두 사람 모두 같았다.
잡스는 당시 게이츠가 가져온 프로그램이 형편없었다고 평가했지만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잡스와 게이츠의 ‘불편한 관계’는 1983년 본격화한다.
잡스는 게이츠와 1983년 1월로 예정된 맥킨토시 출하 이후 1년 동안 타사를 위한 그래픽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지 않도록 합의했다.
맥킨토시의 출시는 그러나 1년 가까이 늦어진다.
결국 게이츠는 1983년 11월 IBM과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한다.
이것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윈도’다.
게이츠는 이후 컴퓨터 운영체제의 독점 논란을 부를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잡스는 파란만장한 행보를 이어간다.
잡스가 2000년대 들어 아이팟과 아이폰, 아이패드로 화려한 부활을 선언했지만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24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흑백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사진 속 서른 살 동갑내기 천재들은 두 손을 양복바지에 넣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게이츠는 그만의 모범생 같은 이미지로 온화하게 웃고 있다. 잡스는 삐딱한 자세로 무엇인가 말하려는 표정이다.
잡스가 영면하지 않았다면 20~30년 뒤 두 천재는 과거를 돌아보며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나눌 사이가 됐을 지도 모르겠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두 사람이 노년에 서로에 대해 평가한다면 글로벌 IT업계에 또 다른 화제가 됐을텐데.
노년의 잡스는 게이츠를 보며 이렇게 속을 뒤집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가 인류를 위해 많은 것을 이뤘다는 것은 인정할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