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 vs. 전략 중심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선거 초반 박원순 범야권 후보가 10%p 정도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를 앞서갔지만 이제는 박빙이다. 그래서인지 나 후보의 얼굴엔 자신감이, 박 후보의 표정엔 초조함이 묻어났다.
중앙선관위 주최 TV토론회가 예정돼있던 20일 각 후보의 일정은 이 같은 분위기를 대변했다. 나 후보는 현장 중심의 일정을 주로 소화한 반면 박 후보는 반나절 이상을 토론 준비에 매달렸다. 그간의 TV토론에서 박 후보가 항상 열세였다는 지적이 많았고, 지지율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평범하지만 세련된 검은 면바지에 수수한 흰색 남방, 그 위에 곤색 계열 반소매 코트를 걸친 게 차림새의 모습은 당차보였다.
이날 일정은 주로 취약한 강북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가는 곳마다 현안을 정확하게 파악해 표심을 뒤흔들었다.
나 후보는 오전 성북구 종암1동에서 보훈단체 회장단과 조찬을 겸한 간담회를 소화한 뒤 곧장 수유동의 한 연립주택으로 향했다. 주민 10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연립은 지은 지 30년이나 됐지만 고도제한에 걸려 재건축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나 후보가 15번째 공약을 이곳에서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공약의 주요 내용은 고도제한 등 규제완화를 포함한 지역상생발전 방안이다. 당연히 주민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오후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용산역 앞에서 길거리 유세를 한 뒤 인근의 한 분리수거업체를 찾아 봉사활동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심한 악취와 소음을 무릅쓰고 플라스틱 병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이후 이동한 곳은 마포의 한 공원. 주로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나 후보는 “다니던 학교(서울여고)가 있는 곳인데 소홀히 하겠느냐”며 지역민심을 파고들었고 반응도 뜨거웠다. 이어 캠프가 위치한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문화예술인 간담회 참석을 끝으로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돌아보면 표를 끌어올 수 있을만한 요소요소에만 집중한 탓에 동선도 의외로 길지 않았다.
저녁 이후부터는 TV토론회 리허설을 준비했고, 결국 토론을 마친 뒤 나 후보가 귀가한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외부 일정이 많을수록 힘은 들지만 효과는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게 캠프 관계자의 설명이다.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도 나 후보의 현장릴레이는 쭉 이어진다.
이내 옆 건물 캠프로 이동한 박 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빠른 속도로 시민복지기준선 공약을 읽어나갔다. 질문은 서너 개밖에 받지 않았다. 이어 동국대에서 가진 대학학보사 공동인터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너 개의 질문만 받았다.
박 후보는 “나머지 질문은 서면으로 답변하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다시 캠프로 이동했다. 뭔가에 쫓기듯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전 라디오 인터뷰가 늦어져 이후 일정이 순차적으로 밀린 탓이지만 이날 밤 예정된 중앙선관위 주최 TV 토론회 준비에 대한 부담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토론회에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던 그다. 따라서 오전에만 공식 일정을 잡아둔 채 점심식사 이후부터 밤 11시까지는 사실상 토론회 준비에만 올인했다.
점심식사 직전 있었던 멘토단과의 첫 공식 만남 장소도 캠프였다. 식사를 겸한 기자간담회를 위해 가까운 쌈지길 옥상공원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그래도 멘토단은 박 후보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공지영 작가, 배우 김여진, 신경민 전 MBC 앵커, 박재동·임옥상 화백 등 쟁쟁한 인사들이 박 후보에 대한 깊은 신뢰와 지지를 표했다. 박 후보는 “사회적으로 업적을 이루신 분들이 제가 뭘 해드린 것도 없는데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답사했다. 샌드위치와 차 등으로 짧고 단출한 식사를 마친 뒤 토론회 준비를 위해 먼저 자리를 뜬 박 후보는 ‘행복한 사나이’였지만 여전히 ‘초조한 후보’로 비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