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허창수 회장 쇄신 의지도 묵살

정병철 부회장은 지난 8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 직후 열린 기자브리핑에서 전경련 쇄신방안을 검토 중이지 않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전경련 쇄신과 관련해) 미국 헤리티지 재단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전경련 쇄신과 관련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달라. 허창수 회장이 발언한 ‘싱크탱크’는 오해가 있었으며, 현재는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의 이 날 발언은 전경련 수장인 허창수 회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었다.
그동안 전경련은 재계단체 맏형으로써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휩싸이면서 해체론까지 등장하는 등 내홍을 겪었다.
이에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쇄신의지를 내비쳤고, 지난달 31일 열린 대통령과 재계 총수 간의 간담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변화와 쇄신을 요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날 정 부회장의 발언은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이와 함께 자신의 거취를 포함한 인적변화와 관련해서도 “회원사가 결정할 문제”라며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정 부회장의 행동에 대해 회원사인 주요 대기업 홍보책임자들 조차 놀라는 반응이다. 전경련의 모든 살림을 책임지는 상근 부회장이라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허 회장의 쇄신의지에 대한 발언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정면으로 뒤집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지난달 17일 국회에 출석해 전경련 개혁을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전경련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우리도 검토하고 있다”며 “직원들에게도 이야기 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도 전경련에 대한 여론이 나쁜 점을 감안, 전경련이 재계의 맏형으로써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변화가 요구된다고 했지만 정 부회장은 대통령의 발언마저 무시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전경련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는데, 향후 50년을 내다볼 때 전경련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개별 기업의 고민과 대책도 중요하지만, 전경련이란 경제단체 측면에서 고민을 많이 해줬으면 한다”며 전경련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전경련에 대한 여론 악화로 감정적으로 대처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대통령과 회장이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상근 부회장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 부회장은 이같은 발언 후 전경련 사무국 직원을 통해 뒷수습을 시도하는 촌극마저 벌였다.
전경련 대변인은 정 부회장의 브리핑 이후 논란이 커지자 “이달 말 각계 인사를 초청해 대토론회를 열어 전경련이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재계 또 다른 관계자는 “상근 부회장에게만 맡기지 말고 허 회장이 보다 강력하게 전경련 조직을 장악할 필요가 있다”며 허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