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우여 한나라당,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
8월이 시작됐지만 국회는 여전히 공전(空轉) 중이다. 산적한 민생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했지만 여야 간 현격한 입장차로 대립전선만 강화됐다. 한미 FTA 비준안, 저축은행 국정조사, 한진중공업 청문회, 반값등록금,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현안마다 여야는 평행선을 긋고 있다. 국회가 제 역할을 포기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돌아왔다. 말로만 ‘민생’을 외치며 내면엔 ‘손익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권의 자화상이다. 본지는 2일 한나라·민주, 양당 원내대표를 만나 8월 임시국회를 대하는 각 당의 입장과 원내전략을 들었다.
- 8월 임시국회 개회를 놓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 8월 국회는 수해 문제와 등록금 문제, 한미 FTA 비준안 등 산적한 국정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조건 없이 열려야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양당 원내대표 간에 합의를 봤다. 개원하기로 국민 앞에 약속한 부분이다.
- 한나라당에선 한미 FTA 비준안과 더불어 북한인권법, 제주특별자치도 영리병원 도입안, 공정거래법안 등 4가지 현안을 포함해 22개 법안을 ‘꼭 처리해야 할 우선법안’으로 분류했는데.
▲ 그렇다. 시급한 민생현안이다. 하지만 이것이 등원의 조건은 아니다. 국회를 열어서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장외가 아니라 국회로 들어와 제도권 틀 속에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조건을 내걸고 국회를 방치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의무 위반이자 책임방기다. 국회는 헌법에 보면 무조건 열게 되어 있다. 조건 없이 열어야 한다.
- 민주당이 의사일정 협의 선결조건으로 내건 한미 FTA 비준안 연기나 등록금 대책, 민생추경예산 편성, 한진중공업 청문회 등과 관련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힐 생각은 없나.
▲ 누차 강조하지만 국회 개원에 선결조건이란 있을 수 없다. 우선 열고 논의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사고방식이 굉장히 권위주의적이다. 민주당 몇몇 사람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자”고 정한 다음에 국회의원이 따르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당 대표나 원내대표는 국회의원보다 높지 않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다 독립된 법률기관이자 헌법기관이다. 한 분, 한 분이 모여서 얘기할 수 있도록 우리는 국회를 열어야 한다.
-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특검도입이나 야당이 주장한 한진중공업 청문회 개최에 대한 입장은 어떤 것인가.
▲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특검은 의논해서 결정하면 된다. 청문회 문제도 국회를 열어서 의논하면 될 일이다.
- 민주당 내 강경파들이 개원 선결조건 관철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 국민들은 당내 문제에 관심 없다. 국민들을 위한 국회가 되려면 엄숙한 국회 의사일정을 빨리 정해야 한다. 국민 앞에서 몇몇 당내 문제 얘기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될 것이다. 국민이 국회의원을 선출했을 땐 국회에 모여 일을 하라고 한 것인데, 몇몇 사람들이 개원을 막으면 국민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선결조건을 자꾸 내거는 것 역시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몇몇이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겸손하지 않은 생각이다. 당 지도부는 국민 앞에, 국회의원들 앞에 겸손해야 한다.
- 단독국회 소집 가능성은 있나.
▲ 단독국회를 왜 여는가. 국회가 많은 세금을 쓰고 있는데 단독국회를 열거나 소집이 안 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야당이 거부하면 국민이 용서 않을 것이다. 민주당도 국회를 내팽개친다는 여론 질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도 분명한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한다. 언론은 국민을 대변해야 하는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논조는 안 된다. 국익을 보고 판단해 달라.
- 8월 임시국회 개회 여부가 불투명하다. 민주당의 선결조건은,
▲ 한나라당에서 한미 FTA 비준 처리를 공언하고 있는데 그런 장(場)을 우리가 열어줄 수 없다. 국익에 위배된다. 원칙적으로 7·8월은 9월 정기국회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사를 위한 준비기간이다. 굳이 이 기간에 임시국회 소집에 동의한 것은 등록금 인하 대책과 수해 복구 등을 위한 추경 편성 때문이다. 시급한 민생현안인 이 두 가지에 국한해서 논의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22가지 법안을 들고 나왔다. 민생관련 법안은 하나도 없고, 전부 정치법안이다.
-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한미 FTA 강행처리는 없다’고 공언했다.
▲ 그간 한나라당 내에 강온 기류가 있었다. 청와대와 홍준표 대표는 강행하겠다고 했고, 황우여 원내대표는 강행처리는 없다고 했다. 여당 지도부 내에서조차 두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나. 반값등록금도 홍 대표가 황 원내대표를 물 먹이고 뒤집었다. 일단 이번 황 원내대표 말은 홍 대표와 어느 정도 논의를 거친 당의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 정부 재정적자가 엄중한 상황에서 추경 편성이 가능하겠나.
▲ 지난 5월 원내대표 취임 이후 반값등록금과 일자리 대책을 위한 추경 편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폭우로 인한 수해 복구까지 늘었다. 구제역으로 정부 예비비가 고달된 상태에서 이제라도 추경 편성을 통해 민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 한진중공업 청문회는.
▲ 조건 없이 열어야 한다. 한진중공업 문제는 우리사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리트머스다. 3차에 걸쳐 수만명이 희망버스를 타고 대열에 합류했고, 정치권과 노동계는 단식농성 중에 있다. 이미 한 기업의 문제를 넘어 비정규직 전체 문제로 비화됐다. 국회가 이 문제를 방치하고 어떻게 민생을 논의하겠다는 것인가. 청문회를 열어 제도권 안에서 노·사·정이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를 일괄타결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람을 잘라내는 수량적 유연화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기능적 유연화의 종합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47일째 행방이 묘연한 조남호 회장도 즉각 귀국, 청문회에 출석시켜야 한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끝내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오세훈 청문회를 예고하기도 했는데.
▲ 서울이 물바다가 됐는데 오 시장이 무상급식 백지화를 위한 불법 주민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나섰다. 순전히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서울시민의 분열을 부추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무엇보다 수해로 상처를 입은 서울시민의 상처를 안고 치유할 때다. 수해방지 예산은 해마다 급격히 줄이면서 주민투표에 182억원을 쏟아 부으려 한다. 이 돈은 피해 복구에 쓰는 게 마땅하다.
- 8월 국회 개회를 위한 막판 여야 대타협의 가능성은.
▲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 있다. 일단 (한나라당이) 한미 FTA는 안 하겠다고 했고, 추경은 부득이하게 편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에 달려있지만 우리 주장이 합리적이니깐 타협을 이뤄낼 수도 있다. 좀 더 논의를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