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병수 한나라당 최고위원
친박계 핵심중진이자 당 지도부 일원인 서병수 의원은 자리에 앉자마자 “지역민심이 굉장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방금 지역구(부산 해운대·기장 갑)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부산·경남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과거와 같은 지역구 관리나 구호성 정치행위로는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것”이라고 위기감을 털어놨다.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재보선 참패로 격랑에 빠진 당내 상황에 대해선 “과거 위기 때와 똑같은 얘기들만 토해내고 있다”면서 “반성을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또 다시 제기된 박근혜 역할론 관련해선 “아직은 때가 아니다”면서 “정기국회 끝나고 총선국면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연말을 전후해 본격적 움직임에 나설 것이란 얘기로 이는 친박계 대다수 관측과 일치한다. 그는 또 이재오 특임장관을 직접 거명하진 않았지만 당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주류 퇴진론’에 “동의한다”고 했고, 이는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같은 입장으로 견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민심 어떤가.
▲굉장히 어렵다. 물가 등 체감경기는 밑바닥이다. 정부가 외형적 경제성장 홍보에 치중하면서 상대적 박탈감마저 있다. 세종시, 신공항, 과학벨트 등 주민들 입장에선 정부가 지방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까지 겹치면서 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감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부산·경남이 더 이상 한나라당의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보나.
▲(짧은 한숨 끝에) 그렇다. 김해 재보선만 보더라도 인물 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남에도 김태호 후보가 어렵게 신승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이란 특성이 있지만 우리로선 상당한 경계와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집권여당이다 보니 정부 실정 등 모든 민생문제에 있어 비판을 받게 된다. 과거와 같은 지역구 관리 행태나 구호성 정치행위로는 현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 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어제 연찬회가 있었다. 총평을 한다면.
▲자극적 언사를 그나마 자제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그러나 내용적 측면에선 과거 위기 때와 똑같은 얘기들만 토해냈다. 원인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결국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실천에 옮기느냐다. 특히 40대와 서민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안을 수 있는 정책을 진정성 있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 당정청 관계도 마찬가지다. 건전한 긴장관계가 필요하다.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면 아무리 (원내대표) 경선해봐야 희망이 없다.
-박근혜 역할론에 대해선.
▲이번만 아니라 매번 위기 때마다 거론돼 왔다. 요지는 실질적 국민의 지지를 받는 사람이 전면에 나서야 당이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인데, 박 전 대표는 비주류다. 필요한 정치현안에 대해선 언급하지만 대권주자가 전면에 나서서 말하다 보면 현 정부와의 트러블(갈등)만 깊어지게 된다. 따라서 여태 자제했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10월) 정기국회 끝나고 총선국면이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총선은 대선을 앞두고 치러지기 때문에 차기정부 국정운영에도 매우 중요하다. 박 전 대표를 포함해 다른 주자들도 전면에 나서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대권과 당권을 분리한) 당헌·당규를 바꿔 전당대회에 나선다 해도 서로 간 불필요한 상처를 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자연스럽게 기회가 왔을 때 나서는 게 맞다.
-총선을 앞두고 나서겠다는 것인데 형태는.
▲선대위원장을 할 수도 있고… 당내 모든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기지 않을까 본다.
-공천 문제는.
▲제일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나라당이 변했는지, 오만한 자세를 버렸는지 국민들 평가가 판가름 날 거라 본다. 과거 실패한 경험(17대 공천파동)을 되풀이한다면 한나라당은 완전히 망한다. 국민이 보고 있고 의원들과 당원들도 알고 있다. 국민 생각을 담은 일반상식에 어긋난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대선주자들이 총선 전 기회가 열린다는 전제조건에서도 객관적이고 합당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군현 의원의 이재오·박근혜 공동대표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는 계파의식을 탈피해야 하지 않겠나. 양대 주주라고 표현을 하는 자체가 과거 구태모습이다. 누구한테 줄서고, 이를 통해 자신의 거취에 득을 보려고 하는 형태의 계파로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가 있을까. 기득권을 도모하려는 사람이 나서서는 더욱 안 된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국민이 실망했고, 그런 면에서 조용히 협력하는 게 맞다.
-민본21을 비롯한 당내 소장파의 주류 퇴진론에 동의하나.
▲동의한다. 특정인을 거명하긴 그렇지만 당을 이렇게 만들어 재보선에서 실패하고 국민 지지를 잃게 했다는 점에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실패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면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다른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하면 2선 퇴진론보다 다른 역할을 하는 게 맞다는 거다.
-원내대표 경선에서도 이 같은 입장은 견지되나.
▲그렇다. 같은 입장이다. 연찬회를 통해 의원들 생각을 충분히 토론했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다.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서 차근차근 국민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해야 한다.
-차기 전당대회에 출마하나.
▲원칙적 문제다. 현 지도부가 선거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면 앞으로 구성될 지도부에는 참여를 안 하는 것이 순리다.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해온 것도,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도 현 지도부다. 그런데 집단지도체제에서 한사람, 한사람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과연 그런지 의문이다. 때문에 저한테 (전대에) 나가겠느냐, 안 나가겠느냐고 물어본다면 아직은 답변을 못 하겠다. 순리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이상한 형태로 간다면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김무성 원내대표가 차기 당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원칙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친이계 대선주자들 중 누가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보나.
▲(한참 생각 끝에) 글쎄. 딱 꼬집어서 누가 경쟁력이 있다고 언급하기엔… 문제는 어차피 당내 경선을 통해 대선주자를 뽑아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치열하면서도 선의의 경쟁을 펼쳐 국민에게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본선은 상당히 긴장해야 한다. 집권여당의 책임을 안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본선이 되리라 본다. 과거 80·90년대와는 정치 환경이 다르고, 국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 없다. 때문에 당내 경선에 너무 치중하다 서로에게 상처가 깊게 패이면 본선에서도 영향이 미치게 된다. 누가 대선후보로 선출되더라도 마음을 비우고 뭉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야권으로 시각을 넓히자면.
▲손학규, 유시민 둘 중 한 사람이 되지 않겠나. 사실 여태 유시민이라고 봤다. YS, DJ, 노무현, 이명박 등 당장은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가치를 위해 몰입하고,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고 극복해 나가는 지도자들이 결국 정권을 잡았다. 비교적 야권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유시민이라고 봤는데, 이번 김해 공천과정을 보면서 실망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결국 조금 더 관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반면 손 대표가 이번에 그런 모습을 보여줬는데 과연 이런 모습을 끝까지 견지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지 못하겠다. 개인적 자질과 식견은 자타가 공인하지만, 영민하고 전문적 지식이 있다고 해서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순 없다. 또 문재인과 김두관도 거론되는 것 같은데, 문재인씨는 오랜 친구 된 입장에서 볼 때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정치엔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 김두관 지사도 능력과 자질은 인정되지만 도지사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박차고 대선에 참여하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국 개인 장래를 위해서도 이번엔 나오지 않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