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한복은 위험한 옷 인식…안내맡았던 직원에만 책임돌려
신라호텔의 한복착용자 출입 제지 파문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첫째딸 이부진 사장이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를 찾아가 직접 머리를 조아리고, 호텔측이 공식사과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호텔의 한복파문은 오히려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의 뭇매가 계속되는 건 신라호텔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지 못한 채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복파문에 대한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호텔신라측은 지난 13일 오후 공식사과문을 통해 “식당 입장 전에 한복을 입은 고객분들께 한복과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도록 했으나 식당 근무 직원의 착오로 미숙하게 고객에게 안내되었다”면서 한복 입장 제지를 현장 직원의 탓으로 돌렸다.
한인규 신라호텔 사업총괄 전무도 같은 날 삼성그룹 트위터에서 “뷔페식당에서 한복을 입으신 고객분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머리숙여 사과드린다”고 말했으나 “한복에 걸려 넘어지는 등 각종 사고가 종종 있어 안내를 드리려 했으나 현장착오가 있었다”고 말단 직원의 문제로 일축시키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이씨가 지난 12일 직원과 나눴던 대화는 현장 직원의 미숙함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인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영화 ‘쌍화점’과 ‘스캔들’ 의상을 맡았던 유명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지인과의 약속을 위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을 찾았지만 이씨는 식당 출입구에서 부터 입장 제지를 받았다. 이씨는 “담당 직원이 호텔 드레스 코드 이야기를 꺼내며 ‘한복과 트레이닝복을 입어선 입장할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황당한 말을 듣고 화가 난 이씨는 담당 지배인을 불렀지만 그 역시 “한복은 위험한 옷이고 부피감이 있어 다른 사람들을 방해한다”며 원칙적인 부분을 또다시 강조했다. 호텔측이 제시한 규칙에 대해 이씨가 20년간 어느 식당에서도 출입 제지를 당한 적이 없다고 항의하자, 호텔측은 또다시 ‘규칙’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 지배인은 “예약 손님에게도 한복을 입으면 입장할 수 없다고 말한다”고 했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화를 나눈 정황으로 볼 때 단순히 현장착오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며 “신라호텔이 아예 한복 입장을 금지하는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라호텔의 공식 사과문에서나 호텔 임원의 트위터 글에서 조차 한복 출입 금지에 대한 규칙 부분은 언급되지 않은 채 직원들의 실수라고 변명하며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후 대책에 대해서도 별 말이 없다. 공식사과문 어디를 뒤져봐도 신라호텔의 드레스코드에 대한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다. 그 대신 한복은 여전히 ‘위험한 옷’이라는 인상만 풍기고 있다.
공식 사과문과 신라호텔 고위 임원의 해명을 접한 네티즌들은 “결국 한복은 위험한 의상이라는 것을 또 반복하는 군요”, “신라호텔 경영진 중에는 뭐가 한복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신라호텔이라는 이름이 가진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경영을 하고 있다”라고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