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공무원이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

입력 2011-03-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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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독재 성장의 축

지난해 제주도는 ‘감귤정책’을 바꿨다. 품종개량, 판로확보, 재배면적 추가 등 상투적인 개선이 아니었다. ‘관’(官)이 주도해온 ‘감귤정책’을 ‘시장원리에 따른 소비자 우선 정책’으로 확 바꿨다. 정책의 모양새가 달라졌다. ‘줄이되 높이고 나가는’ 것으로 변화됐다.

2014년까지 재배면적과 농가는 줄이되 농가수입은 높인다는 목표다. 생산량은 2009년 73만9000t에서 61만1000t으로, 재배면적은 2만898㏊에서 2만㏊로, 재배농사는 3만1208가구에서 3만가구로 줄이는 대신 수입을 1조원으로 올리겠다는 전략이다. 판매처도 국내 시장 위주에서 수출위주 정책으로 바꿨다. ‘관치’(官治)에서 한발짝 벗어난 순간 보고, 보이는 세계가 달라진 것이다.

‘관’(官)은 무엇인가. 벼슬아치다. ‘관청에서 나랏일을 보는 사람’이다. 이들은 독재개발 시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엘리트였다. 1961년 5.16정변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관리)가 국민경제 전반을 끌고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집권 이듬해인 1962년부터 1966년까지의 1차를 시작으로,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1982~1986)이란 이름으로 바뀌어 추진됐고, 1991년 6차로 종료됐다.

30년동안 이어진 경제개발은 ‘관’이 주도했다. ‘민’은 ‘관’이 결정하면 실행하는 예하부대였다. 이 기간 1인당 국민총생산은 125달러에서 6757달러로 53배나 늘었다. 수출규모는 1966년 기준 2억5000만달러에서 1991년 718억7000만달러로 286배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는 꿈을 꿨다. 포니자동차를 보면서 ‘마이카’를 꿈꿨고, 포항의 쇠공장에서 나오는 쇳물을 보며 ‘잘 살아보자’고 의지를 다졌다. 까까머리 중학생은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 포스터를 그리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었다. 그때 ‘관’은 유능했고, 국민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했다.

정경유착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작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맨땅이나 다름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나를 따르라’, ‘하면 된다’(Can Do It) 식의 ‘관 주도형 경제개발’은 가장 효과적인 국가발전의 틀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해도 은행 학교 등을 제외하면 변변하게 들어갈 직장도 없던 시절, 인재들이 공직사회를 몰리는 것은 당연했고, 그들은 국가재건과 발전에 청춘과 정열을 불살랐다. ‘관’ 주도에 한국 경제는 눈부신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독재정권의 붕괴와 함께 민주화·산업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관’의 역할은 쇠퇴했다. ‘관’의 역할도 ‘주도’에서 ‘민’에 대한 ‘서비스’로 바뀌었다. 경제발전의 주축은 시장 참여자, 특히 기업들에 넘어간다.

기업들은 반도체 자동차 휴대전화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에서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월드플레이어로 우뚝 섰다. ‘관’ 주도로 ‘양적 성장’에 성공한 한국 경제는 기업 등 ‘민’의 활약에 힘입어 ‘질적 성장’체제로 진화했다.

요즘 아직도 갈 길 먼, 그래서 미래를 더 꿈 꿔야할 한국 경제가 과거로 회귀(回歸)하고 있다. ‘관’이 주도하는 독재개발식 발상이 다시 시장을 억누르고 있다. 이제는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하고, 용도폐기된 ‘관치’가 21세기에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부재와 실패를 ‘관치’로 다스리려는 ‘망령’(亡靈)이며, 과거의 ‘잔재’(殘滓) 다.

공무원, 특히 고위 공무원일수록 통치자와 정치권의 눈치보기에 급급해 ‘영혼이 없다’는 수모의 말을 들어왔다. 영혼이 없는‘관치’의 치명적 위험은 ‘민’의 순기능을 마비시키는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물가 억제를 위해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는 ‘기업 옥죄기’다.

유통업체에 세무조사를 무기로 가격인하를 요구하고, 백화점의 판매 수수료를 공개토록 하겠다거나, 정유사와 통신사에 가격압박을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장의 기능을 무시한 채 기업을 억압하다보면 투자위축-고용부진-경제 성장률 저하라는 악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경제는 멍들고, 성장 잠재력은 침식당할 수밖에 없다. ‘관치’는 저항과 혼란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정책의 실패는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망친다.

제주도의 ‘관치의 버림’을 보라. 그것이 시장에 얼마나 커다란 활력을 가져다 주는 지를 보라. 소명을 다해 용도폐기된 ‘관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병풍 뒤에 숨어 시장의 뒤통수에 암전(暗箭)을 날리는 행태는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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