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벨트-신공항 논란]유치전은 '점입가경', 전국은 '사분오열'
초대형 개발프로젝트와 공공기관 유치를 놓고 지역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현 정부가 과학비즈니스벨트 및 동남권 신공항, 한국토지주택(LH)공사 이전 등 대규모 국책사업의 입지를 검토-재검토-연기 등 처음과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 공약’을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뒤집은 것이 충청권 반발을 불러온 가운데 영남과 호남, 경기도가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지역간 경쟁이 이제는 지역감정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영남권은 신공항 입지선정 문제를 놓고 ‘부산권과 비(非)부산권’ 사이에 실력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현 정부가 분열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정부의 국책사업에 지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각 지역을 이간질시키고 있다”(자유선진당 권선택 의원)는 지적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때문에 국책 사업이 어느 지역에 낙점되든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건 주요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각 지역별로 유치전에 나서면서 그야말로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과학벨트의 경우 충청·영남·호남간 펼쳐진 유치전이 경기도까지 가세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또 오는 3월 신공항 입지 선정 결과 발표가 알려지면서 부산시와 경남도, 대구, 경북, 울산시 등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들간 유치전은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각 지역에선 국책 사업 유치를 위한 플래카드로 도배되다시피 해 지역간 경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종시 파동에 이어 충청권 非충청권 지역 충돌 양상 = 3조5000억원 가량의 엄청난 사업비가 투입될 과학벨트의 유치를 당연시했던 충청권은 폭발직전이다. 당장 충청권에는 배신감이 팽배해 있다. 충청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선진당은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선진당 권선택 의원(대전 중구)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과학벨트가 선거유세에서 표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식의 발언에 (충청권이)분개하고 있다”며 “한나라의 지도자가 어떻게 국민과의 약속을 손바닥 처럼 뒤집을 수 있느냐”고 맹비난했다. 권 의원은 “지자체를 비롯해 시민단체는 상경투쟁에 나설 태세로 충청의 감정은 악화일로”라면서 “이 대통령이 각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주연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조연”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과학벨트 유치는 민주당 내부에도 혼선과 갈등을 가져왔다. 당론은 ‘충청 유치’지만 호남 지역 의원들은 ‘호남 유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광주 서구을)은 “과학벨트는 국민의 미래를 위한 국가백년지대계로 정치상품화 돼서는 안된다”면서 “당론으로 확정했다고 해서 경쟁력 있는 지역에 기회가 없어지면 안된다”며 호남·영남권·충청 등 3개 지역에 과학벨트를 분산하는 삼각벨트안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대전과 광주, 대구 등 3개시는 해당 권역의 과학기술거점도시로 정치화합 차원에서 삼각 벨트를 같이 함께 묶어서 유치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충청 유치라는 당론과 달리 민주당 호남 지역 의원들이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민주당 내홍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신공항 논란, 부산 vs 대구-경북-경남-울산 대결 =오는 3월로 예정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문제로 영남 지역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신공항 입지 문제는 ‘가덕도’를 앞세운 부산시와 ‘밀양’을 내세운 대구·경북·울산·경남 등 지역간 의원들 사이에 실력 대결 모습까지 벌어지고 있다. 특히 청와대의 신공항 재검토 방침이 ‘與與갈등’에 기름을 부은 형국이다.
경남 밀양 지역구인 한나라당 조해진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밀양은 창원·울산·포항·구미·대구 등 주변 공업도시와의 접근성이 높고, 공사비용도 가덕도에 비해 훨씬 적게 드는 만큼 세비를 크게 절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의원은 이어 “밀양의 경우 (공사비용이)8조~10조원 정도가 예상되는 반면 가덕도는 매립비용이 들어 14조~16조원 정도 든다”면서 “그런데도 3월로 예정된 신공항 입지 결정이 연기된다면 정치적 혼란과 민심이반, 지역분열은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게 될 것이며 모든 사태의 책임은 현 정부가 져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압박했다.
부산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고 있는 한나라당 김정원 의원(부산 남구갑)의원은 “가덕도는 주위에 민가나 산이 없는 해안 공항이기 때문에 소음 문제나 안전성 해결의 최적지”라며 최적지라는 점을 내세웠다. 김 의원 또 “가덕도 옆에는 우리나라 최대 항구인 부산 신항이 있기 때문에 항만·항공 물류 거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며 “공사비용도 밀양보다 3조원 이상 절감된 7조원에 공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LH공사의 지방 이전도 지역 대결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꼬이고 있다. 지난 2009년 10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 통합 직후 이전지를 결정했어야 하지만 1년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 갈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시절 혁신도시 활성화를 위해 주택공사는 경상남도 진주로, 토지공사는 전라북도 전주로 각각 이전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뒤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주공과 토공이 통합되면서 이전지를 두고 지역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LH가 이전되는 도시는 연간 300억원 가량의 세수입을 얻을 수 있으며 수천명에 달하는 직원이 옮겨오면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이들 지자체로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현재 경남 진주에서는 ‘일괄이전’을 주장하고 있으며 전북 전주에서는 ‘분산배치’를 외치고 있다.
민철 기자 tamados@
김기성 기자 kisung0123@
안광석 기자 nov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