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간 근무한 '우리금융맨'…내부출신 첫 회장
연임에 성공한 이팔성 우리금유이주 회장은 1967년 한일은행에 입행한 뒤 우리은행과 우리투자증권에서 40여년을 근무한 정통 ‘우리금융맨’이다.
우리금융 역사상 첫 내부 출신 회장인 이 회장은 이번 연임으로 2001년 우리금융 출범 이후 첫 사례가 됐다. 앞서 우리금융은 출범 뒤 윤병철·황영기·박병원씨 등 외부 출신 회장을 맡아왔다.
1944년 경남 하동군 진교에서 출생해 진교고등학교와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이 회장은 부지런한 CEO로 꼽힌다. 특히 폭 넓은 대인관계로 마당발로 소문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999년 옛 한빛증권(2002년 사명 우리증권으로 전환) 사장을 맡기 전까지 옛 한일은행에서 상무까지 지냈으며 ‘발로 뛰는 영업’으로 유명한 정통 영업맨으로 통한다. 은행에서 지점장 생활을 할 때 아침부터 거래처를 돌며 여수신을 섭외, 여름이면 와이셔츠가 흔건히 젖은 상태로 지점으로 돌아오곤 했다.
맡는 지점마다 좋은 성적을 내 ‘1등점포 제조기’로 불리기도 했다. 1995년 한일은행 영업부장 재직 시에는 국내 은행 점포로는 처음으로 ‘지점수신 1조원’을 달성한 기록보유자이기도 하다.
1996년에는 한일은행 최연소 상근이사가 됐고 국제금융 부문에서도 큰 성과를 올려 국제금융 발전유공 재무부장관상과 수출입 유공 대통령 표창 등을 수상했다. 1999년 한빛증권(현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5년 연속 흑자 행진을 벌이며 수천억원에 불과했던 금융상품 매출도 수조원대로 올려놨다. 이 회장은 당시 국내증권사로선 처음으로 우리은행 점포 안에 증권사 영업소를 개소해 주목 받기도 했다. 이 같은 변화가 시도되면서 증권업계 20위권 밖의 중소형사였던 우리증권은 업계 10위권내의 ‘다크호스’로 성장했다.
2005년에는 자신의 전공과 거리가 먼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맡았다. 이 회장은 악단운영에 민간 경영방식을 도입했고 세계적 지휘자인 정명훈씨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시향은 이 회장 취임 2년 만에 수입이 5배가량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8년 우리금융 회장으로 선임됐다. 업무추진능력이 빼어나고 인적네트워크가 강하다는 평가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