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싸움터 된 골목상권…공정사회 '상생' 시험대

입력 2010-11-11 11:00수정 2010-11-1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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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법 국회통과로 한 고비 넘긴 SSM 쟁점 무엇인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둘러싼 사회 갈등이 10일 국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모습이다. 하지만 대형유통업체들이 대부분 주요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인근에 SSM을 출점시키는 사이 정치권의 갈등으로 제도 마련이 늦어지면서 중소상인들의 피해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형유통사들은 SSM 출점으로 저성장 시대에 새로운 기업의 먹거리를 마련했지만 골목 구멍가게 등을 운영하던 중소상인들은 터전을 대기업에 내주고 밀려나거나 아예 가게를 접고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밖에 없게 됐다. SSM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유통법 통과에 이르기까지의 그동안의 쟁점을 대형유통사와 중소상인, 소비자 등 이해관계 주체별로 다시 짚어봤다.

◇대기업, SSM 사업 무리한 확장 왜?=유통 대기업들이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SSM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유통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동안 유통대기업들의 SSM 점포수는 최근 3년간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 SSM 총 점포수는 가맹점 23곳을 포함해 모두 787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유통 ‘빅3’(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슈퍼)의 SSM 점포는 591개로 75%나 차지하고 있다. SSM 규제 논란이 한창인 지난 한 해 동안만 200여개 점포가 새로 문을 열었고, 올 상반기에만 가맹점을 포함해 114개의 점포가 개점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매출 정체로 어려움을 겪자 SSM이 탈출구 역할을 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SSM은 대형마트에 비해 부지선정이 용이해 대형마트로 커버하지 못하는 소규모 상권을 쉽게 공략할 수 있다.

현재 유통대기업들은 SSM에 관한 중소상인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직영점이 아닌 가맹점 형태로 SSM 사업을 확대하는 우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의 경우 신규출점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반면 SSM은 충분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중소상인과의 상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가맹점 형태로 유통대기업의 SSM 사업확대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대 피해자, 골목 상권 중소상인들=SSM 확장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라해도 중소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이다. 이명박 정부들어 3년 반 동안 SSM이 354개에서 820개로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소형수퍼마켓은 2만개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소상공인들의 생활 환경은 점점 더 비참해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최근 전국 소상공인 1만69명을 조사한 결과 월 순이익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 중소업자들이 절반이 넘었다. 이 조사에서 주목해봐야 할 내용은 이들의 이익이 곤두박질하고 있는 이유로 소매업체들은 SSM과 대형마트 때문이라고 응답했고 소비자들의 구매패턴 변화로 답한 것이 80% 이상이란는 점이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최근 발표한 ‘SSM 인근 소매점포 실태결과’에서도 2009년 이후 SSM 진출 지역 인근 점포(조사 대상 3144개)의 매출액은 평균 48% 감소했다. 고객 수는 51% 줄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작은 수퍼를 하고 있는 김세영씨는(45·여) "작은 수퍼를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에 왔는데 우리가게 1㎞ 근방에 SSM이 두개나 들어와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며 “먹고살 일이 까마득해 먼저 아이들 학원부터 보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여야가 합의해 통과된 유통법은 이제 김씨에게는 크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이미 주요 요지에 SSM이 들어선 이후라 향후 규제의 효율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상인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원하고 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은 출점 허가제 도입 및 지역경제영향평가, 영업시간 및 의무휴업일 수 지정 등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계속 촉구해 나갈 계획이다.

◇소상공인 무너지면서 도매업체 설자리 잃어= 동네슈퍼 등 유통 소매업자들이 몰락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곳은 다름 아닌 중소 도매업체다. 이들은 주로 중소형수퍼에 물건을 공급하면서 자리를 잡아왔지만, SSM이 확대되면서 중소소매업 축소에 따른 매출 타격을 동시에 받고 있다. 특히 신세계 이마트가 도매 유통에 나서면서 중소도매업자들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다.

신세계는 지난 7월 온라인쇼핑몰 이마트몰을 새롭게 오픈하면서 B2B모델을 강화해 동네 슈퍼마켓 등의 개인 사업자만을 가입자로 운영하는 '온라인 법인몰'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주로 구매하는 업소용 대용량 매장 코너도 시작했다.

신세계가 중소도매업의 구원투수를 자임하고 나서자 중소도매업자들은 소매업 살리기 위해 도매업을 죽이는 꼴이라며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영세 도매상이 생존권 위협이라고 반발하는 동안 소매상들은 싼 가격에 제품을 납품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큰 관심을 보이며 상반된 입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도매 유통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이마트가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채널에서도 주도권을 보인다”며 “도매 유통을 장악한 이마트가 납품 가격을 올리거나 일선 슈퍼를 상대로 SSM 가맹점 전환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세계측은 신세계가 동네 슈퍼의 제품을 공급할 경우, 이마트의 구매력이 커져 제조업체와 가격협상에 유리해지고 동네슈퍼는 싼값에 물건을 받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라고 지속 강조해왔다.

◇‘갑’에서‘을’로 제조업자 위상 추락=1990년대부터 대형할인점들이 생기고 최근 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등 국내 3개 대형할인점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할인점에서는 가격인하가 매일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소 제조업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할인점과 SSM은 특별 할인과 경품 증정 행사를 시도 때도 없이 벌인다. 대형유통업체의 경우 제조업체로부터 대규모로 납품 받기 때문에 납품 가격을 동네상점보다 더 낮출 수 있고 경품이나 수수료, 판촉비까지 부담시킨다.

반면 제조업체들은 대형유통사들의 바잉 파워가 커지면서 공급가를 인하해달라는 압력이 커졌다고 말한다. 시장점유율 1위인 제품이나 회사의 경우는 사정은 다르지만 공급가 인하에 대한 압력은 비등하다.

한 식품대기업 관계자는 “1등 브랜드를 몇 개 갖고 있어서 비교적 유통업체들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도 공급가 인하 요청을 자주 받고 있다”며 “SSM까지 대기업이 차지하면서 유통대기업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SSM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 “우리는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반대합니다”지난 9일 수유시장 초입길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로 한산한 시장과 달리 시장 초입에 위치한 롯데슈퍼 내에는 활기가 넘쳤다. 상인 이정희(51·가명)씨는 “수유시장에 들어오는 손님 절반 이상은 롯데슈퍼를 찾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최정희(53)씨는 “롯데슈퍼가 생긴 이후로 사실 물건 사는 것이 편하다”고 한다. 최 씨는 “시장 전부를 돌아다니지 않으면서 양질의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최 씨의 말처럼 쇼핑의 편리함 때문에 소비자들은 SSM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또 외국인 유학생 장췌센(24)씨는 SSM의 장점으로 물건 가격에 믿음이 간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시장에 가면 왠지 가격을 처음에 비싸게 받는 것 같다”며 “물건 가격을 깍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롯데슈퍼에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 일부는 소비자 입장에서 그래도 시장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수유시장 주변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이철규(65)씨는“롯데슈퍼 때문에 우리 시장 다 죽는거여…”라고 말했다. 시장에 온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시장 내에 있는 롯데슈퍼로 다 간다는 것이다. 이 씨는 “기업들이 이렇게 들어오면 우리 시장이 금방 고사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옆에서 맞장구를 치던 김시내(60·수유동)씨는 “롯데슈퍼가 편하기는 하지만 우리 시장도 살아야 한다”며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와서 좋기는 하지만 내 추억이 어린 시장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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