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미 ‘산골소녀에서 그린렐라’ 되다

입력 2010-11-09 08:32수정 2010-11-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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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스타투어에서 우승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세례를 받고 있는 이보미. 사진=박준석 포토

‘산골소녀’ 이보미(22.하이마트)가 ‘4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 국내 상금왕과 대상포인트, 그리고 평균타수 1위와 일본프로테스트(Q스쿨) 통과다.

12년만이다. 골프에 눈 뜬지. 그는 ‘세리 키드’다. 내설악 깊은 산골에 전해온 박세리(33)의 US여자오픈이 그를 골프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최근 K 2TV 드라바 ‘결혼해 주세요’의 여주인공 남정임과 닮았다. 남정임은 이혼과 함께 음반회사의 청소부로 들어가 가수로 데뷔, 일약스타덤에 오른다. 물론 이는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드라마다.

그런데 이보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집안에 어느 누구도 골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의 백담사 인근 북천 물가가 집이었으니까. 연습장은커녕 골프는 꿈속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스포츠였다.

아버지 이석주(51)씨는 전기공사를 했고 어머니 이화자(49)씨는 설악산 가든을 운영했다. 그러니 골프와는 거리가 먼 가족이었다.

박세리를 보고나서 아버지가 권했다. 태권도를 하고 있던 원통초등 5학년 때다. 대다수의 주니어 학부모가 골프를 하면서 자식에게 권하는 것과 달리 아버지 이씨는 골프를 몰랐다.

산길을 타고 넘어 걷고 걸으면 인제의 한 연습장에 발길이 닿았다. 클럽은 다 낡은 대여용으로 해야 했다. 1년 뒤 강원도 출신의 MFS골프 전재홍 사장으로부터 클럽 선물을 받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골프를 하면서 장소를 속초로 바꿨다. 낡은 소형차로 그는 매일 두 번씩 험준한 미시령 고갯길을 넘었다. 산을 넘는데 꼬박 한 시간. 스윙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잡혀갔다. 고운 고사리 손은 어느새 굳은 살이 베겼고 손바닦은 피멍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실전이 문제였다. 그린피를 낼 형편이 못 됐다. 이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라운드할 때 모래를 넣은 군용 더플 백을 치면서 스윙 연습을 했다. 어린나이에 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홀(hole)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때가 많았다.

대회 때도 마찬가지. 연습 라운드는커녕 숙박비를 아끼려고 경기 당일 새벽 집을 나섰다. 그에게 연습 라운드는 ‘사치(奢侈)’였다. 결과는 골프에서 가장 무섭다는 컷오프였다.

같은 용띠 88년생들은 그와 달랐다. LPGA 투어서 활동하는 신지애, 김송희, 최나연. 김인경, 박인비가 동갑내기다. 그는 정말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골프를 그만둬야 하는 회의가 들었다. 기량차이가 심해 이들과 친해질 기회조차 없었다. 나이만 같을 뿐 ‘스스로 왕따’였다.

가난한 부모가 원망스러웠고 속없이 많이도 울었다. 준비하면 기회는 오는가. 체전 강원도 대표로 뽑히면서 코스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이어 국가상비군에 선발됐고 사정은 좀 나아졌다. 동기생들은 이미 프로로 전향하거나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최나연은 고등학교 1학년 때 KLPGA 투어에서 2승을 거뒀다. 신지애도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에서 우승했다. 김인경과 김송희, 박인비 등 도 미국행.

이보미는 고3 때 어머니와 함께 수원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신)지애도 엄마 잃고 저렇게 잘하는데...잠자는 시간 빼 놓고는 클럽과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2007년 프로데뷔한 뒤 2009년 1부 투어에서 활약했다. 그해 가을 넵스 마스터피스회에서 박인비에 연장 끝에 첫 우승을 거뒀다. 그리고 통산 4승. 올해만 3승을 거두며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다.

▲송곳같은 아이언 샷을 구사하는 이보미

지난주 일본Q스쿨 2차예선을 통과했다. 3차전(23~25일)과 최종전(30~12월3일)이 남아있다.

현재 상금 5억5천3백95만원을 획득해 양수진(19.넵스)과 35만원 차이로 1위에 올라있다. 19일 개막하는 ADT캡스챔피언십(총상금 4억원)에 출전해 상금왕을 노린다. 대상포인트에서도 391점으로 양수진을 37점차로 앞서고 있다. 평균타수에서 70.60타로 서희경과 0.33타차로 역시 선두다. 1m60에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 키에 비해 유연성과 근력이 좋아 장타(평균 251야드)이 돋보인다. 마음 놓고 치면 280야드를 훌쩍 넘긴다. 특히 송곳같은 아이언이 예술이다. 아이언의 정확도를 나타내는 파온 확률( 그린스 인 레귤레이션)이 81.52%로 랭킹 1위다.

세리 승전보에 인생이 바뀐 이보미. 일본은 미국진출을 위한 교두보다. 한참 멋을 내야 할 나이. 하지만 그는 골프가 전부다. 한눈을 팔사이가 없다. 이제 시작이다. 이루어야 할 꿈이 더 많아 신바람난다는 이보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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