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미국과는 달리 기준금리 동결과 함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장-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4일(현지시간) "우리의 책임과 임무는 물가를 잡는 것"이라면서 "다른 중앙은행들이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리셰 총재가 물가 안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것은 미국과의 차별화를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전날 6000억달러(약 663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추가로 공급하는 2차 양적완화를 단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차 양적완화를 통해 1조7000억러를 시장에 공급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등 일부 성공을 거뒀지만 빠른 회복세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고용대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은 물가가 목표치인 2.0% 이내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가운데 각종 경기지표가 완연한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는데다 고용시장에도 개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경우 실업률이 15개월째 하락하고 기업의 신뢰도도 3년6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함에 따라 최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1.4%에서 3.4%로 상향 조정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달러화를 전세계로 푸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ECB로서도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달러화가 전세계로 풀리면서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면 ECB는 본연의 임무인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호주 인도 등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전격 인상한 것도 물가를 잡고 자산가격 상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ECB가 금리를 올릴 경우에는 유로화 강세가 더욱 가속화하면서 수출을 비롯한 대외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때문에 섣불리 방향을 잡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트리셰 ECB 총재가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강달러'를 지지하는 미국의 입장을 신뢰한다고 밝힌 것도 ECB의 난처한 상황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