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실패한 시장개입] 정부 간접개입…韓銀 독립성 훼손
금융권 관계자는“정부가 친서민 정책을 추진하면서 물가안정에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정작 행동은 반대로 해 시장의 신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 혼란만 초래했다”고 지적하고“이 과정에서 통화정책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등 중앙은행(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시켰다”고 평가했다.
◇ 시장 외면한 통화정책 =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2010~2015년 장기 전망’을 통해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12~2015년 중 3.0%로 33개 선진국 가운데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3.0%는 이들 국가의 평균인‘1% 중반~2% 초중반’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3.1%로 33개국 가운데 세번째로 높았다.
앞으로의 물가 불안 가능성은 굳이 IMF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올 하반기 들어 물가 상승 압력이 본격화함에 따라 지난달 소비자 물가와 수입물가는 각각 3.6%, 7.8%나 뛰어 한국은행의 예상치를 크게 웃돌았다.
김중수 한은 총재 역시 지난 18일 국정감사에서“올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9%로 예상된다”며 전망치를 지난 7월의 2.8%보다 0.1%포인트 높였다. 경기 흐름과 유동성 추이로 미뤄 내년 상반기까지는 물가상승 압력이 계속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문제는 시장에선 물가상승이 우려되는 만큼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정부는‘모르쇠’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빠른 경기 회복으로 물가 불안이 커졌지만 한은은 금융위기 때의 초저금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지난 7월 기준금리를 17개월 만에 한 차례 올린 뒤 계속 묶어둔 것이다. 급기야 금리가 물가보다도 낮은 ‘마이너스 실질 금리’가 현실화됐다.
무엇보다 통화정책이 시장의 불신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개월간의 통화정책은 여러차례 물가 걱정을 강조해 시장에‘금리 인상’신호를 보내놓고서는 정작 금리 결정 때는 동결을 거듭했다. 동결 배경도 8월엔 세계 경제 불확실성, 9월엔 부동산 경기, 10월엔 환율 하락 등 매번 바뀌면서 물가 안정은 게속 뒤로 밀렸다. 그야말로 말과 행동이 따로따로 움직인 것이다.
◇ 행정력 동원 물가잡기 부작용 우려 = 이 같은 통화정책의 실기는 결국 행정력을 동원한 물가 관리로 이어졌다. 통화정책이 아닌 주요 품목의 수급조절이나 행정력을 동원한 대응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일단 직접 통제 가능한 중앙정부의 권한으로 공공요금은 동결토록 하고, 지방자치단체 소관의 공공요금은 지자체에 대한 재정지원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억제키로 했다. 교육부는 학원비 공개 확대와 대학등록금 상한제 정착 등 교육비 인상을 최소화하기로 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담합조사를 앞세워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다. 자동차보험, 밀가루 및 우유 제조업체 등이 타깃이다.
문제는 이같은 방식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지금의 물가 상승은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물가 상승을 이끌고 있는 형태”라며 “정부가 행정지도를 통해 ‘찍어 누르기’식 가격관리를 계속한다면 당장의 물가는 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컨대 지난 제2차 석유파동(오일쇼크)가 진행됐던 1980년 소비자 물가는 28.7%나 뛰었고 1981년에는 21.4%나 솟구쳤다. 정부가 쉼 없이 단속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이른바 거시안정화 정책, 즉 금리 등 통화정책을 기반으로 했던 1983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3.4%로 떨어졌고 이후 2%대의 안정세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었다.